김상헌선생묘
조선일부 남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선생은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 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예조판서로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폈다. 1645년 특별히 좌의정에 제수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김상헌선생 묘는 선영(先塋) 중 조부 김생해(金生海) 묘 아래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다. 봉분 앞에는 묘표, 혼유석, 석상, 향로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 묘명비(墓銘碑)와 문인석 1쌍이 건립되어 있다. 묘표는 운수방부(雲首方趺; 구름이 조각된 비신 머리와 네모난 비좌) 형태로 운수는 앞뒤 면에 일출(日出)을 형상화했다. 문인석 앞쪽에는 1671년에 건립한 개석방부(蓋石方趺; 지붕돌과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의 묘갈(墓碣)이 있다. 이 묘갈 앞면에는 김상헌이 심양관(瀋陽館)에 구금되어 있을 때 스스로 지은 명(銘)이 손자 김수증(金壽增)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뒷면의 후서(後序)는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이 썼으며, 모두 문인(門人)이라고 썼다. 묘역은 지정되어 남아 있다. 원래 사패지·원림 규모는 도시화로 줄어든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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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