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병원 터
[1895년] 갑오개혁 때 조선 정부의 위생 고문으로 온 일본인 의사 세와키 도시오(瀨脇壽雄)가 일본인 거류지였던 지금의 명동에 세운 병원이다. 이듬해 아관파천으로 세와키가 해고되자 일본 정부가 외무성·해군성 보조금으로 병원을 사들였지만, 겉으로는 독립된 민간 병원처럼 운영했다. 1899년 주한일본공사는 이 병원을 일본이 뒤에서 지원한 회유책 가운데 성과가 가장 뚜렷하다고 보고했다. 1905년 무렵에는 일본 거류민단 병원으로 불렸고, 1906년 이토 히로부미가 "병원 체제를 갖춘 곳은 한성병원 하나뿐"이라고 할 만큼 경성의 대표적인 대형 병원이었다. 1903년(1904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6월에는 고종의 측근 내장원경 이용익이 입원해 있던 병원 안에서 폭발 사건이 일어났으나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병원이 쓰던 건물은 1922년 10월 경성부가 고쳐 경성부립도서관(열람석 60석)으로 열었다. 오늘날 남산도서관의 출발점이다. 도서관은 1927년 소공동 대관정으로 옮겨 갔다. 위치는 추정이다. 1922년 도서관이 된 '구 한성병원 건물'이 명치정 2정목, 지금의 명동2가 25번지 일대(명동성당과 중국대사관 사이, 명동10길)였다는 기록을 따랐다. 1895년 개원 때부터 같은 자리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상가가 들어서 있다.
큐레이션
명동2가 25번지 일대(명동10길) 상가 건물. 표석 없음
이 근처의 다른 기억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양도성 타임머신 위키「한성병원」, 의사신문「한성병원」, 경향신문 황상익「이토 히로부미와 식민지 의료」, 동아일보 염복규「'문화통치'의 상징, 붉은 벽돌 도서관」(2026-02-18), 서울미래유산「남산도서관」, 미디어파인「최초의 공립도서관 남산도서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