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광선생묘
조선
조선 중기의 문학자였던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 1563∼1628) 선생의 묘이다. 1614년(광해군 6)에는 『지봉유설』을 간행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실학 발전의 선구자가 되었다. 묘역은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와 합장된 단분(單墳 ; 하나의 봉분)의 형태이다. 동자석인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서 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띠고 있다. 머리는 쌍계형(雙髻形 ; 두 개의 상투머리가 위로 솟은 형태)으로 묶고 어깨장식을 둘렀으며, 허리띠를 묶어 내린 17세기의 전형적인 동자석인이다. 망주석은 소형이지만 균형이 잘 잡혔고, 귀(耳; 몸돌에 조각된 손잡이 형태의 조형) 장식이 있어 시대성이 명확하다.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정확한 건립연대가 새겨져 있지 않다. 묘역 입구에는 3기의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석)를 세웠는데, 아버지 이희검(李希儉)과 아들 이성구(李聖求)의 신도비가 함께 있다. 묘역은 지정되어 남아 있다. 원래 사패지·원림 규모는 도시화로 줄어든 경우가 많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