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광해군묘
조선
조선 15대 광해군(재위 1608~1623)과 문성군부인 류씨(1576~1623)의 묘이다. 광해군은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어 적극적으로 왜군에 대항하였다. 왕위에 오른 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 복구사업을 계획하고 소실된 여러 서적들을 다시 편찬하였으며 경기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또 당시 명나라와 후금(청)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펴 나라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치열한 당파싸움으로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폐위되었다. 유배생활 18년 만에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문성군부인은 류자신의 딸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비에서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 문성군부인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고, 1641년(인조 19) 광해군이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에 문성군부인묘 서쪽에 묘를 조성하였다. 묘소는 쌍분의 형태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광해군, 오른쪽(동쪽)이 문성군부인의 묘이다. 묘에는 문석인, 장명등, 망주석, 묘표석 등을 세웠다. 묘역은 지정되어 남아 있다. 원래 사패지·원림 규모는 도시화로 줄어든 경우가 많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