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 지도

사릉 석물 채석장 터

조선

사릉 석물 채석장 터

송계별업은 인조의 셋째 왕자인 인평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 1622~1658)의 유적지이다. 인평대군은 이곳에 머물기도 하면서 호를 송계(松溪)라 하였고, 자신의 문객(門客) 이신(李伸)에게 ‘구천은폭’을 써서 폭포 옆에 새기게 하는 등 이곳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658년 인평대군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죽은 뒤 송계별업은 그의 아들들에게 넘겨져 가끔 이용하였을 것이다.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창군 이정(李楨), 복선군 이남(李枏)과 복평군 이연(李㮒)은 종친으로서 너무 정치에 깊숙이 관련되었는데 특히 남인들과 친밀하였다. 그 뒤 송계별업은 주인을 잃고 방치되다가 왕릉의 대부석소가 설치되면서 훼철된 것 같다. 이번에 확인된 사릉 부석소 관련 각자는 그러한 정황을 알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릉부석감조필기’ 각자 기록은 다음과 같다. 채석 작업으로 계곡 경관 요소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 가마·건물은 없음

위도 37.639302 · 경도 126.997362

출처: 국가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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