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25cm 돌이 정한 지하철의 깊이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 1970년 10월 30일의 원점

보신각 울타리 안, 사방 25센티미터 화강암 한가운데에 직경 7센티미터 놋쇠 못이 박혀 있습니다. 수도권 전철의 높이는 여기서 재기 시작했습니다.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출처: 위키백과「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이야기

지상 도로가 막히던 서울

1960년대 후반, 전후 복구와 산업화가 겹치며 지방의 많은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수도 서울로 몰렸습니다. 도시는 날로 커졌습니다. 도로 위에는 전차와 버스, 승용차와 합승택시가 매일 뒤엉켰죠. 극심한 교통 체증이었습니다. 지상 도로만으로는 몰려드는 사람과 차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지상을 입체화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습니다. 도심의 땅속을 파 대량 수송이 되는 전철을 깔아야 한다는 과제가 서울특별시 앞에 놓였습니다.

1970년 3월 17일, 국무총리의 승인을 받아 서울특별시 조례 제609호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설치조례』가 공포됐습니다. 같은 해 6월 9일, 그 대역사를 맡을 서울지하철 건설본부가 발족했습니다.

사업은 바로 구체화됐습니다. 1970년 7월, 제4차 한일각료회담이 열렸습니다. 같은 해 9월, 일본의 지하철건설 기술용역단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시가 추진한 계획은 기존에 없는 지하 노선을 새로 짜는 일이었습니다. 방향은 ‘수도권 고속전철 사업’으로 잡혔습니다. 기존의 지상 철도망을 전철화하고, 도심의 핵심 구간인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는 지하 터널로 뚫어 서로 잇는 계획이었습니다.

굴착 전에 필요했던 원점

굴착기를 대지 아래로 넣기 전에, 기술진에게 먼저 필요했던 것은 정밀한 기준이었습니다. 땅속을 얼마만큼 파 내려갈지, 지하철 선로가 경사를 타고 오르내릴 때 수평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지하 역사(驛舍)의 상하 높이를 무엇으로 가늠할지 정해진 점이 없었습니다. 수평과 높낮이가 수 밀리미터만 어긋나도 전철 선로는 엇갈리고, 지하 터널은 붕괴 위험에 직면한다고 보았습니다.

1970년 10월 30일, 기술진과 지하철건설본부 관계자들이 서울의 한복판, 종로 보신각 마당 울타리 안에 모였습니다. 이곳에 작은 화강암을 땅에 묻었습니다. 사방 25센티미터입니다. 땅 위로 도드라진 높이는 20센티미터입니다.

지하철 수준점 설정 (1970. 10. 30)
지하철 수준점 설정 (1970. 10. 30)
출처: 위키백과「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상단 한가운데에 놋쇠 못이 박혔습니다. 직경 7센티미터, 길이 12센티미터입니다. 화강암 표면에는 정으로 음각했습니다.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

이 못이 수준점(水準點)입니다. 수도권 지하철 전체의 높이와 깊이를 가늠하는 원점입니다. 보신각 앞 기준점이 설치된 뒤, 서울 시내 지하철 공사를 위한 토목 측량은 모두 이 자리를 원점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종로 지하 터널의 천장 높이도, 서울역 지하 승강장의 깊이도,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이어지는 선로의 미세한 경사도, 울타리 안 직경 7센티미터 놋쇠 못을 기준으로 재고 계산했습니다.

거친 흙과 암반을 깨는 현장에서 기술자들은 삼각대와 측량기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보신각 수준점과의 수평 거리를 거듭 대조했습니다. 도성의 시간을 알리던 보신각 옆에, 지하 도시의 수직 기준이 생긴 날입니다. 사방 25센티미터 화강암은 그 측량의 원점입니다. 1호선을 비롯해 그 뒤로 뻗은 수도권 전철망의 세로축 깊이가 여기서 나갔습니다.

지금

보신각 기단 아래, 낮은 담장 바짝 옆에 그 돌이 있습니다. 범종을 보호하는 받침처럼 보이기 쉬운 크기입니다. 지상 20센티미터로 얹힌 화강암입니다. 돌 표면의 글자는 그대로입니다.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 한가운데 놋쇠 못도 남아 있습니다. 반세기 전 지하의 높이를 그리던 그 못입니다.

제야의 종이 있는 마당에서 이 돌은 작습니다. 사방 25센티미터, 직경 7센티미터니까요. 그래도 1970년 10월 30일 이후 서울 지하철 측량의 원점은 이 못이었습니다. 종로 터널의 천장, 서울역 승강장의 깊이,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가는 경사가 여기서 재어졌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지금도 그 글자가 돌 위에 있습니다. 작은 표석이 수도권 고속전철의 첫 수평을 잡아 준 자리입니다.

그 못이 원점이 된 경과는 날짜로 이어집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은 전차·버스·승용차·합승택시가 엉키는 체증이었고, 지상만으로는 대량 수송이 되지 않았습니다. 1970년 3월 17일 조례 제609호로 지하철건설본부 설치가 공포되고, 6월 9일 본부가 발족했습니다. 7월 제4차 한일각료회담, 9월 일본 기술용역단 도착 뒤, 지상 철도 전철화와 서울역–청량리 지하 연결이 ‘수도권 고속전철’의 방향으로 잡혔습니다. 수평이 수 밀리미터만 어긋나도 선로와 터널이 위험했기에, 10월 30일 보신각 울타리 안에 사방 25센티미터·지상 높이 20센티미터 화강암을 묻고 직경 7센티미터·길이 12센티미터 놋쇠 못을 박았습니다. 음각은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입니다. 1호선을 포함한 수도권 전철의 높이, 터널 깊이, 역사의 상하축이 이 못에서 재어졌습니다. 종로 지하 터널의 천장, 서울역 승강장의 깊이,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가는 경사각이 모두 그 계산에 들어갔습니다. 현장에서는 삼각대와 측량기로 이 수준점의 수평을 거듭 대조했습니다. 매일 수백만 명이 지나는 전철의 세로축이, 보신각 기단 아래 그 못에서 시작됐습니다. 사방 25센티미터 화강암과 길이 12센티미터 놋쇠 못이, 1970년 10월 30일의 원점입니다. 글자는 아직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입니다. 못도 그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은 무엇인가요?
1970년 10월 30일 설치된 화강암 표석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 수도권 전철의 높이·지하 터널 깊이·역사 상하 높이를 측량한 원점입니다.
크기와 글자는 어떻게 되나요?
사방 25cm 화강암이 지상 20cm로 나와 있고, 중앙에 직경 7cm·길이 12cm 놋쇠 못이 있습니다. 표면에는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이 새겨져 있습니다.
왜 1970년에 필요했나요?
1960년대 인구와 교통 체증 뒤, 1970년 3월 17일 조례 제609호로 지하철건설본부 설치가 공포되고 6월 9일 본부가 발족했습니다. 서울역–청량리 지하 구간을 포함한 수도권 고속전철의 측량 기준점으로 보신각 울타리 안에 설치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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