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30년대 말, 인천항 부두에 커다란 화물 상자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상자 안에는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의 산기슭에서 해체된 돌탑 부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일본인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기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승탑(僧塔)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일반 석탑과 달리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석조물입니다. 고려 중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승탑은 본래 외사리 마을 산기슭에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수탈의 대상이 되어 원래의 자리를 잃고 포구까지 끌려왔습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이 소식을 들은 간송 전형필이 인천항으로 달려왔습니다. 전형필은 선적 직전의 승탑을 현장에서 구입해 일본 반출을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승탑을 서울로 옮겨 자신이 세운 보화각(현 간송미술관) 마당에 세웠습니다.
산산이 조각난 뒤 다시 세워지다
외딴 산골짜기에서 인천항을 거쳐 서울 한복판으로 옮겨온 승탑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폭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승탑은 무너져 내렸고 각 부재가 마당에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승탑은 오랫동안 조각난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14년이 지난 1964년 2월에야 흩어진 부재들을 하나하나 다시 모아 승탑을 다시 세웠습니다. 전쟁으로 무너졌던 원래의 모습을 비로소 회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배흘림 기둥과 자물쇠 조각
이 승탑은 전체적으로 8각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양식입니다. 기단 아래받침돌은 상·하 2개의 돌로 나뉘는데, 아래에는 안상(眼象, 코끼리 눈 모양의 장식 틀)을 새기고 위에는 연꽃무늬와 8각마다 도드라진 꽃조각을 새겼습니다.
가운데받침돌과 탑신 몸돌에는 특이한 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각 면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배흘림 기둥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몸돌의 남쪽과 북쪽 면에는 문짝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안에는 자물쇠가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사리가 안치된 신성한 공간임을 나타낸 장식입니다.
지붕돌 귀퉁이마다 솟아 있는 커다란 귀꽃(지붕돌 귀퉁이에 도드라지게 조각한 꽃 장식) 역시 이 승탑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줍니다. 괴산의 외딴 산골에서 반출 직전 구출되고, 전쟁으로 파손되었다가 다시 일어선 이 승탑은 1974년 10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이 승탑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마당에 서 있습니다. 괴산의 산기슭 대신 서울 한복판 미술관 뜰에서 손님을 맞이합니다. 탑신 몸돌에 조각된 문짝과 자물쇠, 그리고 1964년 복원된 돌의 자국은 이 승탑이 지나온 수난의 역사 그대로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