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경주 분황사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탑입니다.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힙니다. 멀리서 보면 구운 벽돌을 쌓은 전탑처럼 보이지만, 재료는 벽돌이 아닙니다. 회흑색 안산암을 작고 반듯한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입니다. 벽돌 형태를 본떠 돌을 깎아 만든 탑이라는 뜻입니다.
건립은 신라 선덕여왕 3년, 서기 634년입니다. 나라의 안녕과 왕실, 불교 서원을 담아 분황사를 창건하고, 그 중심에 이 탑을 세웠습니다. 선덕여왕이 사찰 창건과 탑 건립을 이끈 인물로 기록됩니다. 비슷한 시기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자주 나란히 놓입니다. 7세기 삼국의 석탑이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대조입니다.
기단은 1단입니다. 위쪽의 벽돌형 안산암과 달리, 큼직한 자연석으로 다져져 있습니다.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 사자상이 한 마리씩, 모두 네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1층 몸돌은 네 면마다 감실(龕室)이 있습니다. 불상을 모시거나 드나드는 문입니다. 감실 문 양쪽에는 인왕상(仁王像)이 화강암에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습니다. 근육과 옷주름이 남아 있고, 7세기 신라 조각의 사례로 꼽힙니다.
2층과 3층 몸돌은 1층보다 작아집니다. 지붕돌 아래윗면은 벽돌을 계단처럼 쌓은 층입니다. 맨 위 3층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위로 둥글게 솟고, 그 위에 화강암 연꽃장식이 있습니다.

지금 높이는 3층입니다. 옛 기록에는 원래 9층이었다고 나옵니다. 9층에서 3층으로 줄어든 경위와 시기는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9층이었다는 기록이 맞다면, 없어진 것은 위쪽 여섯 층입니다. 남은 3층 안에 634년의 구조가 있습니다. 자연석 기단, 화강암 사자 네 마리, 1층 네 면의 감실, 인왕상, 계단형 지붕, 3층 위의 연꽃입니다. 재료는 회흑색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것입니다.
모전석탑은 흙을 구워 쌓은 전탑과 겉모습이 닮아 있습니다. 실은 회흑색 안산암을 작고 반듯하게 잘라 벽돌처럼 쌓은 탑입니다. 벽돌 형태를 본떠 돌을 깎았다는 이름이 모전(模塼)입니다. 현존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으로 꼽히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세운 해는 선덕여왕 3년, 634년입니다. 분황사 창건과 함께입니다. 나라의 안녕, 왕실의 위엄, 불교 서원을 담은 창건이고, 선덕여왕이 그 사찰과 탑 건립을 이끈 인물로 기록됩니다. 같은 7세기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나란히 비교됩니다. 삼국 석탑이 갈라진 지점을 보여주는 대조입니다.
아래부터 보면 기단은 1단 자연석입니다. 위 몸체의 안산암 벽돌과 재료가 다릅니다. 모퉁이마다 화강암 사자 한 마리, 모두 네 마리입니다. 1층 몸돌 네 면에는 감실 문이 있습니다. 불상을 모시거나 드나드는 문입니다. 문 양쪽 인왕상은 화강암에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고, 근육과 옷주름이 남아 있습니다. 7세기 신라 조각의 사례입니다.
2층과 3층은 1층보다 몸돌이 작아집니다. 지붕돌 아래윗면은 계단처럼 층을 이룹니다. 3층 지붕은 네 모서리가 위로 둥글게 솟고, 맨 위에 화강암 연꽃장식이 있습니다. 옛 기록의 층수는 9층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층수는 3층입니다. 9층에서 줄어든 경위와 시기는 상세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분황사 마당 한가운데에 그 3층이 서 있습니다. 634년, 선덕여왕 3년, 분황사와 함께 세운 탑입니다. 안산암 벽돌형 몸체, 자연석 기단, 사자 4, 감실 4면, 인왕상, 계단형 지붕, 3층 위 화강암 연꽃. 기록의 9층과 지금의 3층 사이, 없어진 층의 경위는 비어 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7세기 석탑을 견주는 사례이고,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쪽으로 꼽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분황사 뜨락 가운데에 3층 모전석탑이 있습니다. 국보입니다. 1층 감실과 인왕상, 기단 모퉁이의 사자상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지붕은 계단 모양이고, 3층 지붕 위에는 화강암 연꽃이 있습니다.
기록이 9층인데 왜 3층이냐는 질문에는, 남은 높이와 빈 기록이 같이 답합니다. 옛 기록은 9층이라 하고, 지금은 3층만 남아 있으며, 위쪽이 없어진 경위와 시기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서 있는 돌은 634년 선덕여왕 때 안산암으로 벽돌 형태를 내 쌓은 그 탑입니다. 기단의 사자 넷, 1층 감실과 인왕상, 계단형 지붕과 화강암 연꽃은 3층으로 남은 탑에 그대로 있습니다. 9층이었다는 옛 기록과, 줄어든 경위가 비어 있다는 사실이 같이 남아 있습니다. 현존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으로 국보에 올라 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7세기 삼국의 석탑을 견주는 탑이고, 선덕여왕이 분황사 창건과 함께 세운 해는 634년입니다. 회흑색 안산암을 벽돌처럼 다듬은 모전석탑입니다. 3층 지붕 네 모서리는 위로 둥글게 솟아 있고, 그 위에 화강암 연꽃장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