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이 자리는 신라 요석궁이 있던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그 터에 경주 최씨 가문이 집을 들인 시점은 1700년경으로 전하지만, 건립을 증언하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해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가문은 이 집에서 9대를 이어 살았습니다. 한 종가가 300년 가까이 같은 터를 지킨 셈입니다. 교동에서는 오래도록 최부자 집으로 불렸습니다.
대문채를 보면 배치가 눈에 띕니다. 작은 방만 둔 것이 아닙니다. 널찍한 곳간을 함께 두었습니다. 외부인이 처음 들어서는 칸에 곡식과 물산 창고를 붙인 구조입니다. 경주에서 이름난 부호 집안이 살림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이 첫 칸이 보여 줍니다.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트인 'ㅁ'자입니다. 몸채만 떼어 보면 평면은 'ㄷ'자입니다. 여기에 'ㄱ'자 사랑채와 '一'자 중문채가 붙습니다. 한 집의 생활 공간이 이렇게 나뉩니다.
안채 서북쪽 모퉁이에는 가묘가 따로 있습니다. 가묘 남쪽으로 길이 반듯하게 나 있습니다. 안채 뒷편에는 꽃밭이 있습니다. 제사 공간과 살림 공간, 그리고 꽃밭이 한 집 안에 같이 있습니다. 이런 건축과 민속 가치로 이 가옥은 국가민속유산입니다.
1970년 11월, 불이 났습니다. 안마당 맞은편 사랑채와 별당이 그날 소실되었습니다. 사랑채가 서 있던 자리에는 주춧돌과 터만 남았습니다.
이름도 세 번 바뀌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될 때 공식 명칭은 '경주최식씨가옥'이었습니다. 당시 소유자 최식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가문과 지역의 맥락을 담자는 뜻이 모여, 2007년 1월 29일 '경주교동 최씨 고택'으로 고쳤습니다. 2017년 2월, 지금 이름인 '경주 최부자댁'이 되었습니다. 개인 명의로 등록된 집이, 종가로 불리던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받은 것입니다.
대문 앞에 서면 먼저 곳간이 있습니다. 1970년 화재 뒤에도 이 칸은 남았습니다. 작은 방과 큰 곳간이 한 채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드는 길과 곡식을 쌓는 칸이 붙어 있습니다. 교동에서 부호로 불린 집의 살림 규모가, 안채보다 앞 칸에 놓여 있습니다.
안채의 'ㅁ'자는 마당을 가운데 둡니다. 몸채의 'ㄷ'자는 그 마당을 삼면에서 감쌉니다. 사랑채는 'ㄱ'자라 바깥 응접을 맡고, 중문채는 '一'자라 안과 밖을 가릅니다. 제사 공간은 안채 서북쪽 가묘입니다. 그 남쪽으로 길이 곧게 나 있습니다. 꽃밭은 안채 뒤에 있습니다. 의례와 살림과 정원이 한 집에서 나뉩니다. 국가민속유산으로 보는 근거가 이 구성입니다.
1700년경이라는 말도, 9대라는 말도, 집이 선 해를 못 박지는 못합니다. 창건 일자를 적은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쪽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최씨 가문이 종가로 이 터를 이어 왔고, 교동에서는 최부자 집으로 불렸습니다. 신라 요석궁 터라는 말도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궁의 주인을 확정하는 기록은 이 가옥의 자료에 없습니다.
1970년 11월의 불은 안마당 맞은편을 태웠습니다. 당시에 서 있던 사랑채가 없어졌습니다. 별당도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주춧돌과 터만 그 범위를 보여 줍니다. 안채, 대문채, 가묘로 가는 길, 꽃밭은 그 불을 피한 쪽에 남았습니다.
서류의 첫 이름은 소유자 최식입니다. 경주최식씨가옥. 부르는 이름은 달랐습니다. 교동 최부자 집입니다. 2007년 1월 29일, 경주교동 최씨 고택으로 고쳤습니다. 2017년 2월, 경주 최부자댁이 되었습니다. 개인 이름에서 가문과 지역의 이름으로, 다시 사람들이 쓰던 최부자댁으로 옮긴 순서입니다.
지금
지금 마당에 서면 빈자리와 남은 건물이 같이 보입니다.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화재로 없어졌고, 주춧돌과 터만 있습니다. 안채와 대문채 곳간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가묘로 가는 길과 안채 뒤 꽃밭도 남아 있습니다.
대문채의 큰 곳간은 여전히 첫 칸에 있습니다. 9대를 이어 온 종가가 곡식과 물산을 집 앞에서 관리하던 배치입니다. 요석궁 전설이 도는 터 위에 1700년경 집이 섰고, 정확한 창건 기록은 없으며, 이름은 최식의 집에서 최부자댁으로 바뀌었습니다. 곳간이 대문에 붙은 이유는, 이 집안 살림의 규모가 출입 첫 칸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9대, 300년에 가까운 종가, 1970년 11월에 잃은 사랑채와 별당, 2007년과 2017년의 이름. 남은 곳간이 그 질문의 답입니다. 최식의 이름으로 지정된 집이, 2017년 2월에 경주 최부자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