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감은사지, 고선사지, 불국사 앞마당을 떠올리면 쌍탑은 좌우가 같습니다. 법당 앞 동쪽과 서쪽에 같은 형태, 같은 크기의 석탑이 섭니다. 통일신라에서 자주 쓴 균형입니다.
남산동은 그 규격에서 벗어납니다. 동쪽 탑과 서쪽 탑이 마주 보지만, 만드는 방법이 다릅니다.
동탑은 모전석탑입니다. 돌을 구운 벽돌처럼 네모나고 매끈하게 다듬어 쌓았습니다. 벽돌 탑을 본떠 돌로 만든 탑이라는 뜻입니다. 바닥돌은 넓게 2중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 위로 다듬은 돌 여덟 개를 한 단처럼 짜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돌 하나입니다. 지붕돌 밑면 받침과 낙수면은 모두 5단입니다. 계단처럼 층이 집니다.

서탑은 2단 기단 위 3층 탑신입니다. 신라 삼층석탑에서 익숙한 비례입니다. 각 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은 동탑과 같이 5단입니다. 양식은 다른데, 이 5단은 양쪽이 같습니다.
서탑에서 더 볼 곳은 아래쪽 기단입니다. 위층 기단의 한 면을 둘로 나누고, 면석마다 신장상을 새겼습니다. 팔부신중입니다.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입니다. 신라 중대 이후 석탑에 나타납니다. 탑을 부처가 있는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수미산을 지키는 여덟 신을 기단에 새겨, 서탑을 그 세계의 표지로 삼은 것입니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다른 모습으로 마주 있습니다. 남산동도 같은 결입니다. 같은 모양의 쌍탑이라는 관습에서 벗어나, 동쪽에는 모전석탑을, 서쪽에는 팔부신중 석탑을 두어 대조와 조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절터의 이름과, 탑을 처음 세운 사람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마주 선 두 탑입니다.
동탑을 아래에서 다시 보면 모전석탑의 순서가 드러납니다. 바닥돌이 넓게 2중으로 깔립니다. 다듬은 돌 여덟 개가 한 단처럼 짜여 기단이 됩니다. 그 위 몸돌은 돌 하나, 지붕돌도 돌 하나입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과 빗물이 흐르는 낙수면이 모두 5단입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전탑의 층을 흉내 낸 형식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모전석탑입니다. 벽돌로 구운 탑 그 자체는 아닙니다.
서탑은 보는 결이 다릅니다. 기단이 2단이고 탑신이 3층입니다.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 밑 받침은 동탑과 같이 5단입니다. 양식은 다른데 이 단수만큼은 같습니다. 아래쪽 기단, 그중 위층 기단의 한 면을 둘로 나누고 면석마다 신장상을 새겼습니다. 팔부신중,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입니다. 신라 중대 이후 석탑에 나타납니다. 탑을 부처가 머무는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표현입니다.
통일신라의 쌍탑은 감은사지, 고선사지, 불국사 앞마당처럼 좌우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 법당 앞의 동쪽과 서쪽. 남산 동쪽 기슭의 이 절터는 그 규격에서 벗어납니다. 동쪽은 모전, 서쪽은 팔부신중 삼층석탑. 불국사 대웅전 앞의 석가탑과 다보탑이 다른 모습으로 마주 선 것과 같은 결입니다. 같은 탑을 둘 세우는 관습에서 벗어나, 다른 양식으로 대조와 조화를 만들었습니다.
누가 세웠는지, 절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산동에 남은 증거는 두 탑과, 없어진 목조 전각의 터입니다. 두 탑은 보물로 보호됩니다.
지금
남산 동쪽 기슭, 마을과 만나는 자리에 두 탑이 보물로 있습니다. 목조 전각은 없고 터만 남았습니다. 동탑과 서탑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같은 쌍탑인데 왜 다르냐는 질문의 답은 탑 두 기에 있습니다. 동쪽은 벽돌을 본뜬 모전석탑이고, 서쪽은 팔부신중을 새긴 삼층석탑입니다. 불국사의 석가탑·다보탑처럼, 다른 양식을 일부러 마주 세운 사례입니다. 누가 어느 절의 이름으로 세웠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동탑 지붕의 5단과 서탑 지붕 받침의 5단만 양쪽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