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러져 있던 쌍탑, 1931년 가을에 다시 세워지다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 도괴된 부재를 경주고적보존회가 맞춘 해

1931년 가을, 경주고적보존회가 흙과 풀 사이에 흩어진 석재를 모아 높이 약 7m의 동·서 쌍탑을 다시 세웠습니다.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처: 위키백과「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야기

원원사 터의 목조 전각은 이미 사라졌고, 동쪽과 서쪽의 석탑은 크게 무너진 채 석재가 땅과 풀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부재가 다시 탑의 형태로 맞추어진 해가 1931년입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창건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원사는 밀교를 계승한 승려 안혜와 낭융, 신라의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이 뜻을 모아 세운 호국 사찰입니다. 안혜와 낭융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불교적 수호 의식을 구상했고, 김유신과 김의원, 김술종은 절을 짓는 물적·정치적 기반을 함께 마련했습니다. 절 이름 원원사(遠願寺)는 멀리서도 나라의 태평과 안녕을 바란다는 뜻을 담습니다.

신라는 그때 안팎의 정세 속에서 법력과 군사·정치의 의지를 한자리에 모아야 했습니다. 승려 둘과 최고위 인물 셋의 이름이 한 절의 창건에 함께 남는 이유입니다.

쌍탑의 돌과 조각

1931년 가을 경주고적보존회는 도괴된 부재를 수습해 복원했습니다. 다시 선 두 탑은 같은 구조의 2중 기단 삼층석탑이고, 높이는 약 7m입니다. 하층기단의 면석과 갑석,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입니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짜여 있습니다.

동 삼층석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조각상
동 삼층석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조각상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동 삼층석탑의 기단부와 탑신부 조각상'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상층기단 갑석 4면에는 기둥 사이마다 연화좌가 있고, 그 위에 십이지신상이 앉아 있습니다. 머리는 쥐, 소, 호랑이 같은 짐승이고, 몸은 신라 사람이 입던 평복입니다. 옷자락은 하늘로 날리는 형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기단은 연꽃 위에서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십이지의 자리로 읽힙니다.

1층 탑신석부터 3층 옥개석까지는 각 층이 하나의 돌입니다. 1층 탑신 4면에는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사방을 향합니다. 기단의 십이지가 시간과 방위를 맡고, 탑신의 사천왕이 외적과 악귀를 막는 배치입니다. 안혜·낭융의 밀교와 김유신·김의원·김술종의 호국 의지가,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으로 탑에 남아 있습니다.

탑이 무너져 흙에 묻히면서 그 조각도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1931년 가을, 경주고적보존회가 부재의 이음새를 맞추어 세우자 사천왕과 십이지가 다시 탑의 표면에 올랐습니다.

1931년이 다시 맞춘 숫자

복원 전의 원원사지는 목조 전각이 없어진 폐사지였습니다.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며 세웠다는 동쪽 탑과 서쪽 탑은 도괴되어, 석재가 땅속과 풀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경주고적보존회가 그 부재를 수습해 올린 것이 1931년 가을의 작업입니다. 다시 선 높이는 약 7m입니다. 동탑과 서탑은 같은 양식의 2중 기단 삼층석탑입니다.

돌의 매수는 층마다 적혀 있습니다. 하층기단 면석 8매, 하층기단 갑석 8매, 상층기단 면석 8매, 상층기단 갑석 4매. 1층 탑신석에서 3층 옥개석까지는 각기 하나의 큰 돌입니다. 조각의 위치도 나뉩니다. 상층기단 갑석의 기둥 사이, 연화좌 위가 십이지입니다. 1층 탑신 4면이 사천왕입니다. 십이지는 짐승의 머리에 평복의 몸을 하고, 옷자락이 하늘로 날립니다. 사천왕은 갑옷과 무기를 들고 사방을 향합니다. 아래는 시간과 방위, 위는 외적과 악귀를 막는 배치입니다.

창건의 이름은 삼국유사에 있습니다. 밀교 승려 안혜와 낭융,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안혜와 낭융이 수호의 의식을 구상하고, 김유신과 김의원과 김술종이 절을 세울 기반을 함께 냈다는 기록입니다. 원원사(遠願寺)는 멀리서도 태평과 안녕을 빈다는 이름입니다. 1931년 가을에 다시 선 약 7m의 쌍탑은, 그 호국 사찰이 돌 위에 남긴 십이지와 사천왕을 풀밭에서 끌어올린 결과입니다.

지금

원원사지 동쪽과 서쪽에는 1931년에 다시 세워진 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표면에는 마모가 남아 있고, 상층기단 연화좌의 십이지와 탑신석의 사천왕 윤곽은 아직 읽힙니다.

땅에 흩어져 있던 석재가 다시 약 7m의 쌍탑이 된 해는 1931년 가을입니다. 그 탑에 새긴 평복의 십이지와 갑옷의 사천왕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안혜·낭융·김유신·김의원·김술종의 호국 사찰이 돌 위에 남긴 형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언제, 어떻게 복원되었나요?
땅과 풀밭에 무너져 있던 부재를 1931년 가을 경주고적보존회가 수습·복원해 높이 약 7m의 쌍탑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원원사는 누가 창건했나요?
삼국유사에는 밀교 승려 안혜·낭융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이 뜻을 모아 호국 사찰로 세웠다고 전합니다.
십이지상과 사천왕상은 어디에 있나요?
상층기단 갑석 4면의 기둥 사이 연화좌에 평복을 입은 십이지상이 있고, 1층 탑신석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삼국유사, 국가유산청 오픈API, 藤島亥治郞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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