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 6대손이 1733년에 지은 집, 현판은 두곡이다

양동마을 남촌 · 이제중이 세우고 이조원이 사들인 뒤 호를 붙인 집

1733년, 영조 9년에 회재 이언적의 6대손 이제중이 남촌에 집을 올렸습니다. 지금 대문에 남는 이름은 두곡고택입니다.
전경
전경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전경'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경주 양동마을은 안강평야를 끼고,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뿌리를 이어 온 동족마을입니다. 그 남촌의 살림집이 왜 건립자의 성이 아닌 두곡으로 불리는지가 이 집의 기록입니다.

1733년, 서쪽을 메운 배치

조선 영조 9년(1733) 이제중은 회재 이언적의 6대손으로서 남촌에 살림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손댄 지세는 서쪽이 낮고 허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방향을 빈터나 담장만으로 두지 않고, 터를 골라 마구간을 두어 낮은 쪽을 건물로 받쳤습니다.

평면은 안채·사랑채·아래채가 트인 'ㅁ'자입니다. 대문채는 4칸으로, 오른쪽 2칸은 광, 왼쪽 1칸은 문칸방입니다. 대문을 지나 서쪽에는 그 마구간이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1칸입니다. 칸은 청지기방 1칸, 방 2칸, 대청 2칸입니다. 사랑채와 아래채 사이에는 중문이 있습니다. 중문 안 왼편은 아래채, 오른편은 'ㄱ'자 안채입니다. 안채가 꺾이는 지점에 안방을 두고, 안방 왼쪽에 부엌을 두었습니다. 행랑채와 방앗간까지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 집의 칸 구성이 한 울안에 있습니다.

집을 산 사람의 호

영조 대에 세워진 뒤 소유가 바뀝니다. 두곡 이조원이 이 집을 사들였습니다. 이언적의 후손 이제중이 터를 잡고 지었으나, 사람들은 건립 가문의 이름 대신 매입해 살던 이조원의 호 두곡(杜谷)을 붙여 두곡고택이라 불렀습니다. 이조원의 손자 이희태를 거치며 남촌의 집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후손이 이 집에서 삽니다.

마구간의 위치, 'ㅁ'자 평면, 안채와 사랑채와 아래채의 관계는 주인이 바뀐 뒤에도 남았습니다. 1733년의 지세 보완과, 훗날 붙은 호가 한 집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칸을 따라 읽으면

양동마을은 안강평야를 품은 월성 손씨·여강 이씨의 동족마을이고, 이 집은 그 남촌에 있습니다. 건립은 조선 영조 9년, 1733년, 회재 이언적의 6대손 이제중입니다. 이언적은 조선 성리학의 학자로 동방오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됩니다. 6대손이 지은 집인데 집 이름은 그 가문의 호가 아닙니다.

지세는 서쪽이 낮고 허했습니다. 이제중은 그 자리를 비우거나 담장만 두르지 않고, 터를 골라 마구간을 세웠습니다. 대문을 들어 왼쪽 서쪽이 그 마구간입니다. 대문채 4칸은 오른쪽 2칸이 광, 왼쪽 1칸이 문칸방입니다. 문간과 광과 문지기의 방을 칸으로 나눈 구성입니다.

사랑채는 앞 5칸, 옆 1칸입니다. 청지기방 1칸, 방 2칸, 대청 2칸. 선비의 공부와 손님 맞이에 쓰이던 칸 수입니다. 사랑채와 아래채 사이의 중문을 지나면 왼편에 아래채, 오른편에 'ㄱ'자 안채가 있습니다. 안채가 꺾이는 곳에 안방, 안방 왼쪽에 부엌입니다. 행랑채와 방앗간까지 있어 안채·사랑채·아래채가 트인 'ㅁ'자와 부속채가 한 울안입니다.

소유가 바뀐 뒤의 이름은 매입자의 호입니다. 두곡 이조원이 집을 사 거처로 삼았고, 사람들은 건립자 이제중이나 6대조 이언적의 이름 대신 두곡(杜谷)을 붙여 두곡고택이라 불렀습니다. 이조원의 손자가 이희태입니다. 이희태를 거쳐 후손이 지금도 이 집에서 삽니다. 1733년의 마구간과 'ㅁ'자 평면은 그 매매 뒤에도 남촌의 집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양동마을 남촌, 안강평야를 뒤로 한 자리에 두곡고택이 있습니다. 1733년에 올린 마구간, 4칸 대문채, 사랑채, 안채, 방앗간, 행랑채가 이어져 있습니다. 서쪽이 낮아 터를 골라 세운 마구간, 대문채의 광과 문칸방, 'ㄱ'자 안채의 안방과 그 왼쪽 부엌이 그때의 칸 나누기를 보여 줍니다.

이언적 6대손 이제중이 1733년에 세운 집이 두곡고택인 까닭은, 그 집을 산 이조원의 호가 집 이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희태를 거친 뒤에도 후손이 그 칸에 살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두곡고택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나요?
집을 사들인 이희태의 조부, 두곡 이조원의 호 두곡에서 왔습니다.
처음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조선 영조 9년(1733년) 회재 이언적의 6대손 이제중입니다.
마구간을 서쪽에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쪽이 낮고 허한 지세를 보완하려고 터를 골라 마구간을 배치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지도에서 보기 유적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