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때 타고 행랑채만 남았다, 1917년에 다시 세운 정자

양동마을 심수정 · 1560년경 건립, 화재 뒤 1917년 재건

1560년경 여강 이씨 문중이 세운 정자는 철종 때 화재로 행랑채만 남았습니다. 다시 세워진 해는 1917년입니다.
상부 가구
상부 가구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상부 가구'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안강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양동마을 언덕의 정자, 심수정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 안에 있습니다. 지금 보는 몸체는 처음 지은 해의 나무가 아닙니다.

1560년경의 정자, 철종의 화재

심수정은 여강 이씨 문중에서 처음 세웠습니다. 기록은 조선 명종 15년(1560) 무렵을 가리킵니다. 문중 세거지의 정자로, 산과 들을 보며 문중의 모임을 두던 자리였습니다.

철종 대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났습니다. 불은 본채와 대청, 누마루를 태웠고, 담장 밖에 서 있던 행랑채만 남았습니다. 문중은 그 터를 비워 두지 않았습니다. 행랑채가 옛 격식을 지니고 남아 있었고, 1917년에 정자를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1917년의 일은 빈터에 다른 집을 올린 기록이 아닙니다. 1560년경의 모습을 기억하고, 남은 행랑채의 격에 맞추어 원래 형태로 다시 지었습니다. 불탄 정자가 그 해에 문중의 손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ㄱ’자, 누마루, 향단이 보이는 쪽

다시 선 심수정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입니다. 평면은 ‘ㄱ’자이고, 꺾이는 자리에 대청이 있습니다. 대청 양옆은 방입니다. 왼쪽 방 끝에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습니다. 누마루에서는 북촌 일대가 보이고, 그 안에 보물로 지정된 향단이 있습니다.

담장 밖 행랑채도 ‘ㄱ’자입니다. 칸은 방, 마루, 방, 부엌, 광이 한 칸씩 이어집니다. 화재 때 남았던 채가 이 줄입니다. 아랫마을에서 언덕을 올려다보는 경관은 마을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여름에 그 경관이 두드러진다고 전합니다.

세 해로 다시 적으면

첫 해는 조선 명종 15년, 1560년경입니다. 여강 이씨 문중이 세거지에 정자를 세웠습니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함께 살아 온 동족마을이고, 심수정은 그 문중이 산과 들을 보며 모이던 자리입니다. 안강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입니다.

다음 고비는 철종 대입니다. 원인 모를 불이 본채, 대청, 누마루를 태웠습니다. 담장 안의 정자 몸체는 잿더미와 빈터가 되었고, 담장 밖에 있던 행랑채만 남았습니다. 문중은 터를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행랑채가 옛 격식을 지니고 있었고, 터의 기억은 문중에 남아 있었습니다.

세 번째 해는 1917년입니다. 근대에 접어든 뒤 문중은 정자를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1560년경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 남은 행랑채의 격에 맞추어 원형을 살려 다시 지었습니다. 빈터에 다른 형식의 집을 올린 기록이 아닙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로 다시 섰습니다.

다시 선 평면은 ‘ㄱ’자입니다. 꺾이는 곳에 대청, 그 양옆에 방, 왼쪽 방 끝에 난간 달린 누마루. 누마루에서는 북촌이 보이고, 북촌 안에 보물 향단이 있습니다. 행랑채도 ‘ㄱ’자이고 순서는 방, 마루, 방, 부엌, 광, 각 한 칸입니다. 아랫마을에서 올려다보는 경관이 양동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여름의 그 경관이 특히 전해집니다. 1917년에 다시 선 이 정자는 국가민속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심수정은 국가민속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담장 밖 행랑채와 담장 안 누마루가 같이 있고, 1917년에 다시 올린 정자가 언덕 위에 있습니다.

철종 때 타고 행랑채만 남았던 정자가 다시 선 해는 1917년입니다. 누마루에서 보이는 북촌의 향단, ‘ㄱ’자 대청, 방·마루·방·부엌·광으로 이어진 행랑채가 1560년경의 형태를 그 해에 되살린 결과입니다. 여강 이씨 문중이 명종 15년에 세운 정자를, 원인 모를 화재 뒤 남은 행랑채의 격에 맞추어 다시 올린 기록이 1917년입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이고, 여름에 아랫마을에서 올려다보는 경관이 으뜸으로 꼽힙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심수정은 언제 처음 지어졌나요?
조선 명종 15년(1560년)경 여강 이씨 문중에서 처음 세웠습니다.
지금 건물은 언제 다시 지어졌나요?
철종 때 화재로 행랑채만 남은 것을 1917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었습니다.
건축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ㄱ’자형 정자와 담장 밖 행랑채로 되어 있고, 누마루에서 향단이 있는 북촌을 바라봅니다. 행랑채는 방, 마루, 방, 부엌, 광 순입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지도에서 보기 유적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