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지금의 효창공원을 걷다 보면 이곳이 원래 왕실의 묘역이었다는 사실은 알아도, 한때 이곳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효창원은 원래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실 인물들의 묘가 있던 곳입니다.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어린 세자와 그 곁에 묻힌 이들이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1921년 6월, 조선호텔 측이 이 효창원 부지에 9홀 골프장을 열었습니다. 수도권 최초의 근대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효창원이었을까요.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골프는 총독부 고위 관료와 일부 외국인들만 즐기던 낯선 스포츠였고, 도심에서 가깝고 넓은 평지가 확보된 부지는 흔치 않았습니다. 왕실 묘역으로 조용히 남아 있던 이 언덕이 손쉬운 대안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조선 왕실의 어린 세자를 비롯한 이들이 잠든 땅 한켠이, 그렇게 식민지 지배층의 여가 공간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골프장의 수명은 길지 않았습니다. 1924년 12월 2일, 경성부가 효창원을 공원으로 지정하면서 골프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개장 3년 반 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운영되던 경성골프구락부는 청량리 코스로 자리를 옮겼고, 짧았던 효창원의 골프장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지금 이곳은 효창공원으로, 백범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자리해 있습니다. 왕실의 묘역이었다가, 잠시 골프장이었다가, 다시 독립운동가들이 잠드는 자리로 — 같은 땅이 백 년 사이 세 번이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 이 공원을 산책하는 이들 중 이곳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이제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