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서 서울 성북동까지… 전형필이 수습한 석탑의 비밀

일제강점기 수탈 위기를 넘어 간송미술관에 안착한 5층 석탑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문경에 서 있던 석탑 하나가 일본인에 의해 유출될 위기에 처하자, 간송 전형필이 이를 수습해 서울 성북동으로 옮겨 세웠습니다.
2·3층탑신과 상륜부
2·3층탑신과 상륜부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2·3층탑신과 상륜부'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1층부터 4층까지 지붕돌 받침은 모두 4단인데, 왜 유독 5층 지붕돌만 받침이 3단일까요?

이 석탑의 원래 고향은 경상북도 문경시 관음리입니다. 고려 시대 전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5층 몸돌을 올린 형태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들어 석탑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문경 관음리에 있던 이 석탑을 뜯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전형필 선생이 직접 나섰습니다. 일본인들의 수탈과 유출 시도를 막기 위해 석탑을 수습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꿔온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야외로 옮겨 세웠습니다.

당시 석탑을 정확히 어느 해 어느 날에 옮겼는지, 옮길 때의 구체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탓에 한동안 문경에서 전해져 온 탑이라는 뜻으로 '전(傳)문경오층석탑'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5층 지붕돌에 남은 어색한 흔적

석탑은 2단의 지대석과 2단 기단, 5층 탑신부, 그리고 노반과 복발이 합쳐진 상륜부까지 비교적 큰 파손 없이 남아있습니다.

하층 기단 각 면에는 안상 3구씩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상(眼象)은 석탑 기단 면석에 오목하게 새긴 꽃 모양의 장식 조각입니다.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자물쇠 모양의 조각이 작고 얕게 새겨져 있습니다. 석탑 안에 사리를 모시는 문(문비)의 모양을 간략하게 표현한 흔적입니다.

그런데 석탑을 위로 올려다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문경 오층석탑
문경 오층석탑
출처: 위키백과「문경 오층석탑」

1층부터 4층까지의 옥개석(지붕돌)은 받침이 모두 4단이고 처마 밑도 수평을 이룹니다. 하지만 5층 지붕돌만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듭니다. 5층 지붕돌은 처마도 얇고 끝부분이 살짝 위로 들어 올려져 있어 아래 4개 층의 지붕돌과 양식이 전혀 다릅니다.

한 석탑 안에서 지붕돌 받침 수가 다른 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5층 지붕돌은 석탑이 이동하거나 수습되는 과정에서 다른 석탑의 부재가 올려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유출될 뻔한 석탑을 성북동 뜰에 다시 세워 보존한 덕분에, 이 석탑은 1974년 10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8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문경 오층석탑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야외 정원에 세워져 있습니다.

1층 몸돌에 새겨진 얕은 자물쇠 조각과 5층 지붕돌의 3단 받침 구조는 지금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경에서 시작된 석탑의 긴 여정은 서울 성북동 뜰 한편에 정지해 있습니다.

문경 오층석탑 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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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문경 오층석탑」

자주 묻는 질문

석탑이 원래 있던 위치는 어디인가요?
경상북도 문경시 관음리에 서 있었으나, 옮겨 세운 정확한 위치나 날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5층 지붕돌만 구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1~4층 지붕돌 받침은 4단이지만 5층만 3단이고 처마 양식이 달라, 이동 및 수습 과정에서 다른 석탑의 부재가 조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물로 지정된 해는 언제인가요?
1974년 10월 2일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58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 「문경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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