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조선시대 도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청계천은 여름철 큰비가 내릴 때마다 수시로 물이 넘쳤습니다.
세종 대에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해 측우기를 제작하면서, 하천의 물높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수표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한강변에는 바윗돌 표면에 직접 눈금을 새겼고, 청계천에는 낮은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올려 수위를 측정했습니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기둥은 물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썩거나 휩쓸려 나갔습니다.
성종 재위 기간(1469∼1494년)에 이르러 튼튼한 돌기둥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높이 3미터, 폭 20센티미터의 화강암 사각기둥을 깎아 만든 석수표가 청계천 물속에 새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돌기둥 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삿갓 모양의 머릿돌을 얹었습니다. 기둥 아래쪽에는 직육면체 초석을 땅속 깊이 박아 거센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이 돌기둥 눈금을 보고 어떻게 홍수 위험을 미리 알아채고 대비했을까요?
비결은 돌기둥 양면에 새겨진 직관적인 눈금과 숫자 표시에 있었습니다. 돌기둥 표면에는 1척(약 21센티미터) 간격으로 1척부터 10척까지 눈금이 깊게 새겨졌습니다. 특히 3척과 6척, 9척 위치에는 동그라미(O) 표시를 또렷하게 각인했습니다.
이 O표시는 물의 상태를 세 단계로 구분하는 기준이었습니다. 3척은 가뭄으로 물이 말라 적은 상태인 갈수(渴水)를 나타냈습니다.
6척 안팎은 물이 보통 수준으로 흐르는 평수(平水)를 의미했습니다.
물이 계속 차올라 9척(약 189센티미터)을 넘어서면 물이 크게 불어난 대수(大水) 상태로 보았습니다. 하천 관원들은 멀리서도 9척 O표시 위로 물이 넘치는 모습을 확인하는 즉시 도성 사람들에게 범람 위험을 알렸습니다. 세종 때의 나무 수표처럼 촌이나 푼 단위까지 세세하게 재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한눈에 위험 수위를 알아보는 재해 예보 기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서울 청계천 수표는 청계천 물길이 아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 야외 정원에 서 있습니다.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3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3미터 높이의 화강암 기둥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 관원들이 확인했던 1척부터 10척까지의 눈금과 3·6·9척 위치의 O표시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