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08년, 동대문 밖 동관왕묘의 왕실 제사가 정지되었습니다. 대한제국 조정이 국가 제사 의례를 정비하는 향사이정령을 반포하면서, 왕실이 직접 관리하고 제사를 올리던 동관왕묘의 관리가 지방 관청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향사이정령은 대한제국기 국가 제사 제도와 의례를 축소하고 개편하기 위해 제정한 법령입니다.
이 사당은 선조 32년인 1599년에 공사를 시작해 선조 34년인 160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명나라 장수들이 관우의 신령을 보았다고 보고했고, 전쟁이 끝난 뒤 명나라 신종 황제가 친필 현판과 건축 자금을 직접 보내 건립을 요청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흥인지문 밖 숭인동에 9,315m² 규모의 동관왕묘를 지었습니다.
건물 구조는 조선의 일반적인 사당과 크게 달랐습니다. 앞뒤로 긴 직사각형 평면에 옆면과 뒷면 벽을 벽돌로 쌓았고, 높은 '丁' 자와 '一' 자가 합쳐진 '工' 자형 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 무게를 받치는 장식에는 새 부리 모양으로 뻗어 나오는 익공계 양식을 적용했습니다.
익공계 양식은 주두(기둥 머리) 위에 새 부리 모양의 익공 부재를 얹어 처마를 받치는 조선 후기 목조 건축 기법입니다.
실내 본실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함께 그의 친족 및 부하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조각상을 안치했습니다. 서울의 동서남북에 세워진 관왕묘 가운데 동관왕묘가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1908년 향사이정령이 시행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조선 왕실이 300년 넘게 관장해 온 제사는 공식 폐지되었고, 관리는 지방 관청으로 이괄되었습니다. 남대문 밖 남관왕묘를 비롯해 고종 때 지어진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도 이때 제사가 폐지되거나 훗날 철거되었습니다.
왕실의 제사는 멈췄지만 전각은 남아 보수 과정을 거쳤습니다. 1963년 1월 21일, 서울 동관왕묘는 대한민국의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백자 병은 '백자 동묘치성병 명병'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 10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11년 10월에는 금동 관우상 뒤편 일월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재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동관왕묘는 옆면과 뒷면의 벽돌 벽체, 그리고 工자형 지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 본실에는 관우상과 관평, 주창 등 4명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1908년 왕실 제사는 끊겼지만, 17세기 중국풍 건축 양식과 조각상들은 보물로 지정되어 현장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