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친일 금광업자가 지은 연면적 945.45m² 규모의 일본식 별장이 어떻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가 되었을까요?
이 건물은 1938년 금광업자 최창학이 서울 평동에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개인 별장이었습니다. 건립 당시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습니다. 건물의 설계는 경성고공 출신의 근대 건축가 김세연(1897~1975)이 맡았습니다. 1층에는 밖으로 튀어나온 출창을 두고, 2층에는 안으로 들여놓은 아치창을 넣은 서양식 양관 형태였습니다.
1945년 8월 광복이 찾아오고 같은 해 11월 4일 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했습니다. 최창학은 이 건물을 김구의 거처로 제공했습니다. 김구는 일제식 명칭인 죽첨장 대신 건물 근처 개울에 있던 다리 이름 '경교(京橋)'를 따서 이 집을 '경교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청사이자 반탁 운동의 중심지
경교장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관이자 한국독립당 본부로 쓰였습니다. 임시정부 성격을 띤 민족진영 회의 기구인 비상국민회의의 국무회의도 이 건물에서 열렸습니다.
광복 직후 정국의 핵심 이슈였던 신탁통치 반대 운동과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주요 논의가 모두 경교장 내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에 김구가 서거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는 순식간에 주석 암살 현장이 되었습니다.

대사관저와 병원 현관으로 변해간 60년
김구 서거 후 경교장은 소유주였던 최창학에게 반환되었습니다. 이후 건물의 용도는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는 주한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되었습니다.
6·25전쟁 기간에는 미국 특수부대와 국군의료진이 주둔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월남대사관 관저로 쓰였습니다.
1967년 삼성재단이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을 설립하면서 이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병원은 경교장 뒷면에 병원 본관 건물을 붙여 신축했습니다. 경교장 건물은 오랫동안 병원 현관과 약품 창고로 활용되었습니다. 2층 서쪽에 있던 김구의 옛 집무실 공간만 작은 기념실로 유지되었습니다.
200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습니다. 이후 내부 병원 시설을 옮기고 2011년부터 전체 복원 공사를 진행하여 2013년 3월 1일 개관했습니다.
지금
현재 경교장은 강북삼성병원 본관 건물 전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건물 우측면과 후면이 병원 신축 건물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공간에는 1930년대 양관 건축 당시의 출창과 아치창, 그리고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서거한 2층 서쪽 집무실이 복원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