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년 묘비 옆면, 한자 두 글자만 빼고 한글인 이유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 노원구 하계동, 이문건의 경고문

노원구의 사각형 묘비 앞면과 뒷면은 한자로 가득합니다. 왼쪽 옆면만 점과 선의 한글입니다. 1536년에 그 글을 새긴 이유는 글의 끝에 있습니다.
보물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전면)
보물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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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 비석이 선 해는 조선 중종 31년, 1536년입니다. 묵재 이문건이라는 선비가 먼저 세상을 떠난 부친 이윤탁의 묘를 어머니 고령 신씨의 묘와 함께 합장하고, 묘비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부모의 넋을 기리고, 조상의 묘가 후대에도 평온하기를 바라는 일이었습니다.

조선에서 묘비는 가문의 내력과 고인의 업적을 알리고, 후손에게 가문의 자긍심을 전하는 표지였습니다. 묘비의 글자는 격식을 갖춘 한문이었습니다. 이문건도 부친 이윤탁의 이름과 일생을 비석 앞뒤에 한문으로 새겼습니다.

비석이 거의 끝날 무렵, 이문건에게 걱정이 하나 남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묘역을 지나는 사람이 무덤을 훼손하거나 돌을 해치면 어찌할 것인가. 그 시절 산기슭과 묘역 주변에는 땔감을 구하러 산을 오르내리는 나무꾼, 어린아이, 마을의 사노비와 평민이 자주 오갔습니다. 사대부의 한문 비문은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뜻을 전하지 못했고, 묘역 근처를 드나들며 돌을 건드릴 수 있는 이들 가운데 한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출처: 위키백과「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이문건은 가문의 격식보다 묘를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비석 측면에 한문이 아닌, 읽고 알 수 있는 순 한글로 경고를 새기기로 했습니다.

옆면에 새긴 경계문은 짧고 분명합니다.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라는 한자 두 글자를 빼고, 문장 전체는 한자가 섞이지 않은 순 한글입니다. 한문을 번역해 덧붙인 언해문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한글 문장으로 쓴 원 국문 문장입니다.

「이 비는 신령한 비석이니, 훼손하는 사람은 재앙을 받으리라.」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비석을 해치지 말라는 말이 돌 위에 있습니다.

조선의 순 한글 문장은 18세기에 이르러 널리 나온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한글영비는 그보다 앞선 16세기 초, 사대부의 손으로 순국문 문장이 쓰였음을 보여 줍니다. 1536년이라는 건립 연대가 비석에 있어서, 우리나라 비석에 새겨진 최초의 한글 묘비문으로 꼽힙니다.

비석의 한글 서체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 직후의 초기 판본체와, 그 뒤 변해 간 서체의 중간 성격을 띱니다. 한글이 사대부와 민간의 글살이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연대가 적힌 돌로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부친 이윤탁의 묘를 지키려 한 이문건의 선택이, 조선 국어사의 기록으로 남은 비석입니다.

1536년의 일을 돌 위에서 다시 읽으면 순서가 분명합니다. 이문건은 부친 이윤탁과 모친 고령 신씨의 묘를 합장하고, 가문의 내력과 고인의 일생을 앞뒤에 한문으로 새겼습니다. 묘역을 드나들던 나무꾼과 아이, 사노비와 평민 가운데 한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측면에는 영비라는 한자 두 글자만 남기고 순 한글로 경고를 넣었습니다. 「이 비는 신령한 비석이니, 훼손하는 사람은 재앙을 받으리라.」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입니다. 18세기에 순 한글이 널리 나왔다고 알려진 통념보다 앞선 16세기 초의 글이고,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어 비석에 새긴 최초의 한글 묘비문으로 꼽힙니다. 서체는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직후의 판본체와 그 뒤 서체의 중간형입니다. 노원구 하계동 묘역의 이 보물은,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묘를 해치지 말라고 전하려고 옆면을 한글로 채운 1536년의 비석입니다. 사각형 돌의 앞뒤에는 양반가 문중의 한자가 빽빽하고, 왼쪽 옆면만 점과 선으로 된 훈민정음입니다. 이문건은 부모의 합장묘를 지키려 묘비를 세웠고, 한문만으로는 묘역을 드나드는 필부에게 뜻을 전하지 못한다고 보아 측면을 순국문으로 채웠습니다. 영비를 뺀 문장에는 한자가 한 글자도 없습니다. 16세기 초 사대부의 순 한글이 돌에 남은 사례이고, 연대가 있어 최초의 한글 묘비문으로 꼽히며, 서체는 창제 직후와 이후의 중간형입니다. 전란을 지나서도 파손되지 않은 채, 조선 초·중기 국어 생활의 자료로 보물 지정을 받고 있습니다. 하계동의 잔디밭 묘역에 선 이 비의 옆면을 읽으면, 1536년 이문건이 한문 대신 택한 경고가 그대로 있습니다. 훼손하는 사람은 재앙을 받으리라는 그 문장입니다. 앞뒤 한자는 이윤탁의 이름과 일생이고, 옆면 한글은 묘를 지키라고 적은 경계문입니다.

Stele of Yi Yuntak carved Hangul 02.jpg
Stele of Yi Yuntak carved Hangul 02.jpg
출처: 위키백과「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지금

이윤탁 한글영비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동의 묘역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앞뒤의 한자와 옆면의 한글이 한 비석에 같이 있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훼손하는 자는 재앙을 받으리라」는 한글 경고가 있는 이 돌은, 전란을 지나면서도 파손되지 않고 16세기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1536년 이문건이 부친 이윤탁과 모친 고령 신씨의 합장묘를 지키려고, 한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전하려고, 영비 두 글자를 뺀 순 한글로 옆면을 채운 비석입니다. 옆면이 한글인 이유가 그 경고입니다. 1536년, 묘를 훼손하지 말라고 적은 순 한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 비석이 세워진 시기는 언제인가요?
1536년(조선 중종 31년)에 이문건이 부친 이윤탁과 모친 고령 신씨의 묘를 합장하며 세웠습니다.
한글영비가 국어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비문 중 최초로 한글 경계문이 새겨진 묘비로, 비석의 이름인 영비를 제외하고는 한자가 섞이지 않은 순국문으로 쓰여 16세기 한글의 보급 양상과 초기 서체를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비석의 한글 경고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이 비석이 신령한 비석이니 훼손하는 자는 재앙을 받을 것이며,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비석을 해치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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