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세검정 골짜기는 북한산 아래 물과 바위가 있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유람지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이 돌기둥이 처음 선 시대로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맞서던 자리입니다.
이야기는 신라 무열왕 6년, 659년으로 돌아갑니다. 삼국은 주도권을 두고 전쟁을 치렀고, 백제와의 국경에서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신라의 장수 장춘랑과 파랑이 그 전선에 있었습니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전사 장소는 황산 벌판 근처로 추정되는데, 두 사람의 소식이 서라벌 왕실까지 전해지자 신라 무열왕은 그 죽음을 애통해 했습니다.
무열왕은 두 장수의 명복을 빌고 영혼을 위로할 사찰을 짓도록 명했습니다. 북한산 남쪽 자락, 지금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절이 ‘장의사’입니다.
절 이름 ‘장의(莊義)’는 ‘장렬한 의로움’을 뜻합니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장수들의 죽음을 기리고, 그 넋을 불법으로 위로하려는 뜻이 이름에 있습니다.
사찰이 선 뒤, 절 입구에는 당간지주가 마주 보며 세워졌습니다. 당간지주란 사찰에서 큰 의식이나 행사가 열릴 때 ‘당’이라는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 곧 당간을 양쪽에서 받치는 돌기둥 둘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장의사에서 스님이 외우는 불경을 들었고,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장춘랑과 파랑, 그리고 병사들의 넋이 안식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금 남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 석조물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화려한 조각 없이 단정한 형태입니다. 기둥 바깥쪽 모서리를 살짝 깎았고, 기둥 안쪽 윗부분에는 당간을 고정하려고 둥근 구멍을 뚫었습니다.
다른 당간지주는 기둥 머리에 장대를 걸치는 홈을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의사지 당간지주는 기둥 상단 안쪽에 구멍을 관통시켰습니다. 망덕사지 당간지주와 비교하면, 이 기둥 자체는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사찰의 목조 현판과 법당, 탑은 사라졌고, 돌기둥은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천 년이 넘는 동안 이 자리에 남았습니다.
전쟁의 죽음을 기리려고 세운 호국 사찰 장의사. 한때 국왕이 치제하고 스님의 염불이 이어지던 절은,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며 쇠퇴해 사라졌습니다. 20세기에 그 옛터 위에 초등학교가 들어섰습니다.
659년의 기록을 교정 앞에서 다시 놓으면 이렇습니다. 신라 무열왕 6년, 백제와의 싸움이 벌어진 황산 벌판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서 장수 장춘랑과 파랑이 전사했습니다. 무열왕은 두 사람의 명복을 빌고 영혼을 위로할 사찰을 짓도록 명했고, 북한산 남쪽, 지금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장의사를 세웠습니다. 장의는 장렬한 의로움입니다. 절 입구의 당간지주는 의식 때 당, 곧 깃발을 거는 당간을 양쪽에서 받치는 돌기둥입니다. 바깥 모서리를 깎았고, 기둥 머리의 홈 대신 안쪽 윗면에 둥근 구멍을 관통시켜 당간을 고정했습니다. 망덕사지 당간지주와 견주면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법당과 탑과 현판은 고려와 조선을 지나 사라졌고, 국왕이 치제하던 절터에는 동서로 마주 본 기둥만 남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곁에 서 있습니다. 학교 교정에 이 돌이 있는 이유는, 659년 두 장수의 명복을 빌던 장의사의 입구가 그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세검정 골짜기는 물과 바위가 있어 조선의 선비도 유람하던 곳이었으나, 기둥이 선 659년에는 백제와 신라의 전선이었습니다. 장춘랑과 파랑의 죽음이 서라벌에 전해지자 무열왕이 절을 명했고, 절 이름 장의는 그 죽음을 기린 말입니다. 당간은 의식의 깃발을 거는 장대이고, 지주는 그 장대를 양쪽에서 받칩니다. 구멍은 기둥 머리가 아니라 안쪽 윗면을 관통합니다. 목조 전각은 없어지고 보물로 지정된 돌기둥만,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 옆에 동서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을 차는 교정과 1,300년 전 장의사의 입구가 같은 좌표입니다. 기둥이 여기 있는 이유는 659년의 그 절이 이 터였기 때문입니다. 황산 벌판 근처로 추정되는 전투에서 죽은 장춘랑과 파랑의 명복을 빌던 절의 당간만 남았습니다.
지금
장의사의 흔적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당간지주 한 쌍만 세검정초등학교 교정에 동서로 마주 보고 남아 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옵니다. 그 옆에서 1,300년 전 신라 장수들의 명복을 빌던 돌기둥이 서 있습니다.
지주 바깥면에는 소박한 선이 남아 있습니다. 659년 황산 벌판 근처로 추정되는 전투에서 전사한 장춘랑과 파랑의 명복을 빌려고 무열왕이 절을 짓게 한 자리, 그 절의 입구를 받치던 기둥이 학교 운동장에 남은 이유입니다. 세검정초등학교 교정이 장의사의 옛터입니다. 운동장의 돌기둥은 그 절 입구의 당간지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