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농사의 신에게 풍년을 빌고 백성에게 권농의 뜻을 전하던 국가 의식은 1910년(순종 융희 4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임금이 제단을 올려 제사를 마친 뒤, 제단 동남쪽에 마련된 국왕 직할 밭인 적전(籍田)에서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친경(親耕)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황제가 농기구를 잡는 수백 년의 전통은 1910년 그 마지막 행사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제단 터에 들어선 학교들
황실의 의례가 끊기면서 선농단 권역의 모습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이 넓은 제단 터에는 경성여자사범학교가 건립되었습니다. 임금이 소를 끌고 고령의 농부들이 왕을 도와 밭을 일구던 자리가 교정과 학교 건물로 채워졌죠.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이곳 권역으로 옮겨왔습니다. 오랜 제단과 커다란 향나무가 남은 공간 주위로 학생들이 오가는 풍경이 한동안 펼쳐졌습니다.

1975년 캠퍼스 이전과 주택가의 형성
197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선농단 일대는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넓은 대학 부지는 민간에 매각되었고, 그 자리에 밀집한 주택가가 들어섰습니다. 왕이 밭을 갈던 넓은 적전 구역은 주거지로 변했고, 제단과 향나무가 있던 일부 터만 보존 구역으로 떼어져 남았습니다.
1972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던 선농단은 2001년 12월 2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36호로 승격되었습니다. 1973년 지방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왕이 친경할 때 오르내리던 친경대가 경내에 남아 있다고 보도되었으나, 주변이 주택가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현재는 그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주택가 한가운데에는 가로 세로 4m 크기의 제단과 문인상, 그리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남아 있습니다. 2015년에는 선농단 입구 지하에 선농단역사문화관이 개관하여 선농제와 친경 의례의 내력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곡우가 되면 옛 임금의 행차와 제사 의식을 재현하는 선농제 행사가 이곳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