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관 터 (초대 일본공사관)
조선지금은 볼 수 없음1882년 사라짐
[1880년] 원래 조선 후기 한양을 지키던 군영인 경기중군영 자리. 맑고 찬 물이 솟는다 하여 '청수관(淸水館)'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일본이 이 자리를 차지해 공사관으로 썼고, 1880년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정식 공사로 부임하며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식 외교관계에 따른 **최초의 외국 공관**이 됐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성난 군중에 의해 불타 소실됐다. 일본공사관은 이후 교동(관훈동 일대, 박영효의 집)으로 옮겼으나 1884년 갑신정변으로 다시 불탔고, 1885년 한성조약에 따라 조선이 부지·건축비를 부담해 남산 왜성대(현 통감관저 터, `waeseongdae-chongdok`)에 새로 지어 이전했다 — 두 차례나 불타며 자리를 옮긴 끝에 남산에 정착한 셈이다.
큐레이션
지금 이 자리
서울금화초등학교 정문 앞에 '청수관 터'·'경기중군영' 표석 설치
이 근처의 다른 기억
출처: 서울앤(seouland.com)「이괄 반란군 주둔지·일본 공사관 자리…역사의 소용돌이 터」, 파이낸셜리뷰「[역사속 오늘리뷰] 4월 17일 주조선 일본공사관 설치」, 나무위키「주한일본공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