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중국대사관

조선온전히 남음

[1882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후 청나라 정부가 매입한 명동 부지. 이듬해 한성상무공서가 설립돼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이곳을 거점으로 조선 내정에 깊이 관여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공서가 폐쇄됐다가, 1898~99년 무렵 대한제국 주재 청국공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며 공사관은 폐쇄됐지만 총영사부는 유지됐다. 이후 이 부지는 중화민국(대만) 대사관으로 쓰였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 건물·부지 소유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으며, 중화민국 대사관 철수 과정에서 기밀문서 소각과 장제스 동상 이송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2013년 지금의 신축 대사관 건물이 완공됐다. 청나라·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주체가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중국'이라는 국가의 외교 공관이 1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용도가 통째로 바뀐 인근 통감부·중앙정보부 터들과 대비된다.

큐레이션

지금 이 자리

주한중화인민공화국대사관 청사로 사용 중(2013년 신축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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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37.562974 · 경도 126.9830225

출처: 위키백과「주한 중국 대사관」, 한국일보(2012-01-24)「명동 한복판 중국대사관 신축 현장 가봤더니」, 나무위키「주한청국공사관」(공사관 설립 연도 1898/1899 출처 간 불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