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비
1969년 김수영 타계 1주기에 건립된 현대시인 김수영을 기리는 시비이다. 시인의 선영인 도봉동에 건립된 후 1991년에 도봉산으로 이전되어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90, 도봉서원 앞에 위치해 있다. 시비에 새겨진 구절은 그의 마지막 작품 「풀」의 두 번째 연이며, 글씨는 시인의 친필이다. 시인은 초기 작품에서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발표했다. 1956년 전후 발표한 작품들에서는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겪어야 했던 지성의 방황과 고민을 승화하여 당시 모더니스트들의 유행적인 시사성, 관념성 등을 극복함으로써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은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나 선린상업학교를 졸업(1942)하고 일본 도쿄 상대에 입학, 연극연구소에서 연출수업을 받는다. 1943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가족들이 있는 만주 길림성으로 떠났다가 그곳에서 길림극예술연구회에 참여, 무대에 서기도 한다. 1945년 9월, 광복 후 김수영은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다. 시 「묘정의 노래」를 ≪예술부락≫에 발표, 이 작품을 계기로 시인은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한다. 1946년에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했다가 그만두고 영어 강사, 통역 등을 한다. 1950년 한국전쟁 후 의용군에 강제 동원되었다가 탈출, 체포당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그곳 수용소 내 미 야전병원의 통역관이 되었다가 1952년 11월에 온양 「국립구호병원」에서 석방되었다. 1956년부터 집에서 닭을 기르며 시창작과 번역에만 전념했다. 1958년 11월, 제1회 을 수상하고 1959년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춘조사에서 출간했다. 1968년 4월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세미나에서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했다. 그해 47세 때인 1968년 6월 15일, 밤에 귀가하던 중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여 그 다음날 6월 16일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는 서울 도봉동에 있는 누이 김수명의 집 뒷동산에 있으며, 1969년 5월 1주기를 맞아 문우와 친지들이 그의 마지막 시 ‘풀’을 새긴 시비를 세웠다. 김수영 문학관은 방학3동 문화센터를 리모델링해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에 위치해 있다.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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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 인증 2013-040, futureheritage.seoul.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