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집
「선천집」은 1971년 개업한 전통한식당이다. 선천집을 창업한 박영규 사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수라간 상궁인 한희순의 제자 황혜성에게 궁중음식을 사사받았다. 19세기말 개화바람이 불면서 인사동 일대는 교회, 인쇄소, 출판사, 요릿집, 병원 등이 들어서고 신식 동네로 변해갔다. 천도교 수운회관, 숭동교회, 태화관 터, 해정병원 등은 그 시절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인사동에 미술 붐이 일면서 동산방, 선화랑, 가나화랑, 노화랑, 가람회랑 등이 속속 문을 열었다. 인사동이 명실공이 문화예술인의 거리가 되면서 샛길 안쪽 한옥에 전통적인 분위기의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예술인은 사천집, 언론인은 경향식당, 가난한 화가들이 잘 가는 사동곰탕, 부산식당 등도 이 때 들어섰다. 선천집은 이 중 문인들이 자주 찾는 단골집이었다. 박영규 사장의 고향은 평안북도 선천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공산당 정권의 종교탄압을 피해 1947년 월남하였다. 당시 17세 나이였다. 다시는 못 돌아갈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선천집’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열었다. 박영규 사장의 스승은 어머니와 황혜성 선생이다. 어머니에게는 황해도의 기본반찬을, 황혜성 선생에게는 궁중 요리를 배웠다. 황혜성(1920~2006)은 중요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다. 2018년 11월 1일 『아시아경제』의 “[한국의 백년가게]평양북도 선천,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짓밥” 제하의 기사에서 박영규 사장은 자신의 음식철학을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하였다. “음식의 기본을 황 선생님께 배웠다. 특히 선생께서 강조했던 것은 음식의 기본이 되는 간이었다. 조미료에 의지하지 않고 소금과 재료 본연의 맛으로 음식을 내야한다는 철칙을 세우고 있다.” 선천집의 메뉴는 간단하다. 한식과 한정식 코스 메뉴와 불고기, 낚지볶음, 파전 등 8가지 일품요리가 전부다. 평안도의 장맛과 김치 맛을 유지하지 위해서 박 사장은 남한산성 부근에 있는 집에 30여 개의 장독 항아리를 직접 관리하였다. "김치는 생새우나 생낙지를 넣어 맛을 내고 감칠맛을 더한다. 가정식을 내놓는 집이라면 된장, 김치 등 양념이 되는 음식을 직접 만들고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박영규 사장의 요리 원칙이다. 찌개에도 조미료를 넣지 않고 조갯살과 표고버섯, 북어 등으로 국물을 내 시원한 맛을 낸다. 선천집은 정치인과 문인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황석영 작가는 장편소설 ‘심청’의 발간 기자회견을 선천집에서 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선천집을 찾았다가 빈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연 식당이 어느새 50년이 넘도록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전히 한식을 찾아주는 단골들 덕분이라며, 이들을 위해 그만두기가 힘들다는 박영규 사장. 남북분단의 아픔과 인사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선천집은 미래세대에게 서울의 기억을 전해주는 서울의 미래유산이다.
서울미래유산
이 근처의 다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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