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가발

대한민국온전히 남음

「스카라 가발」은 1975년 개업하여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가발 전문점이다. 1960~1970년대 가발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당시 가발은 우리나라 수출량에서 10.8%를 차지해 전체 수출품목 중 3위에 달했다. 가발 수출만으로 1억 달러를 벌어들여 ‘세계 1위 가발 수출국’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당시 가발을 생산한 구로공단 여공들은 파독 광부, 간호사들과 함께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이었다. 스카라 가발은 1975년 황범자 씨가 개업한 이후 남녀특수가발, 부분가발, 전체가발 등을 제작 및 보급해 온 전문점이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수출 주력상품이던 가발은 1990년대 들어 값싼 해외 제품이 들어오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스카라 가발은 연구와 개발을 꾸준히 이어갔다. 1994년 5월 22일 『매일경제』의 “앞서가는 여성 스카라 가발(연)대표 황범자)씨” 기사에서 황범자 대표는 국내 가발 제조기술의 우수성을 언급하면서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헤어스타일이며, 가발이라고 해서 무조건 머리에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어울리는 디자인과 나름대로의 사용법을 알고 난 후 이용하는 게 순서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보다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헤어스타일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심경의 변화에 따라 짧은 머리 모양을 했다가 또 어떤 날은 긴 머리 스타일로 바꿔보고 싶은 충동도 일게 마련이지요. 그럴 때 짧은 머리카락이 긴 머리카락으로 자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발이 필요하게 되지요. 그런데 가발이라고 해서 무조건 머리에 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올바른 디자인과 나름대로의 사용법을 익힌 후 이용하는 것이 순서겠지요.” 충무로에서 50년 가깝게 운영된 스카라 가발은 짧지 않은 역사만큼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2019년 9월 15일 『월간조선』의 “가발의 세계 외모 관리를 위한 자연스러운 액세서리로 진화 중”이라는 기사에는 에피소드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이방자(李方子, 대한제국 영친왕의 비) 여사도 우리 가게에서 가발을 맞추고는 돌아가셨다. 신문에 부고 기사가 난 걸 보고 ‘이 가발이 임자를 잃었구나’했는데, 돌아가신지 일주일 쯤 있다가 나이 많은 비서가 찾아와 ‘태워드린다’고 하면서 가져갔다.” 가발 제작은 기계로 찍어내 만드는 것과 일일이 손작업으로 만드는 것이 있으며 머리카락 재료도 인조모와 진짜 사람 머리카락을 이용한 것이 있다. 앞서 언급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황범자 씨는 스타일이 각기 다른 가발을 여러 개 준비한 후 의상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 사용하도록 권장하기도 하였다. “가발도 사람의 두발과 같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더러워지면 미지근한 물로 샴푸를 한 뒤에 잘 헹궈 린스까지 하는 것이 좋고, 습기가 약간 남아 있을 때 원하는 대로 모양을 잡아 잘 말려야 오랫동안 쓸 수 있습니다. 가발도 파마나 염색 등 일반 머리에 가하는 각종 미용법을 적용할 수 있으며, 전문점에 세탁을 맡기면 1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집에서 손질하는 법을 알아두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스카라 가발은 황범자씨의 딸 나유나 대표가 2002년부터 가발제작기술을 배워가면서 가게 운영에 참여하여 현재는 대표가 되어 운영하고 있다. 개업 초기엔 충무로 인근의 극단, 엔터테인먼트 사업 종사자, 정치인 등이 주 고객이었으나, 현재는 탈모환자가 주 고객층이다. 또한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가발이 대중화 되어 탈모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발을 착용하고 있다. 고객들이 제품에 만족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나유나 대표. 1970년대 한국의 대표수출 상품이었던 가발산업부터 오늘날까지 가발제조업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미래유산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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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37.563181654796 · 경도 126.992814333429

출처: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 인증 2020-011, futureheritage.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