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배옥

한말·일제온전히 남음

「잼배옥」은 1933년 김희준이 개업하여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이다. 서울역 뒤편, 동자동 근처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하였고, 1974년 서울시청 건너편 중앙일보사 인근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름 없는 노포였던 설렁탕 집을 동자동의 예전 지명인 ‘잠바위골’에서 ‘잼배’를 따오고, 거기에 당시 식당을 뜻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였던 ‘옥(屋)’자를 합쳐 손님들이 애칭 삼아 부르던 명칭이 상호로 자리 잡았다. 2015년 12월 21일 『한경스포츠』의 “1933년 문 연 서소문 설렁탕집 '잼배옥', 진한 국물에 한잔 생각…신문사 '꾼'들 침 넘어간다” 기사에서 잼배옥의 2대 주인인 김현민은 ‘잼배’의 뜻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였다. “잼배옥이 생겨난 곳이 바로 잠바위라고. 내 고향이 중구 도동 1가 91번지요. 지금 남대문 5가동 말이오. 거기에 잠바위가 있었어. 붉은 자(紫), 바위 암(岩). 자바위가 잠바위가 된 거지. 그게 잼배가 되고. 잼배옥이란 일본식 가게를 뜻하는 옥(屋)자를 붙여서 작명한 것이지.” 서울에 설렁탕이 처음 규모를 갖춘 곳은 남대문 밖 잠배였다. 20세기 초까지 남대문 안쪽에는 한성에 물건을 공급하는 선혜청 창내장(현 남대문 시장)이 있었고, 남대문 바깥쪽엔 한강을 따라 올라온 생선을 주로 파는 칠패시장이 있었다. 새벽에 장이 열리는 칠패시장 때문에 어물전 상인과 인부들은 새벽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 필요했다. 칠패시장 주변 잠배 설렁탕은 이러한 필연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잠배에 있던 설렁탕 식당들은 1900년 경인철도 남대문정거장이 세워지면서 급속히 몰락한 칠패시장과 운명을 같이한다. 하지만 6.25전쟁 이전까지 잠배골에선 ‘잠배설렁탕’이란 집이 유명했다. ‘잼배옥’의 이름에는 이러한 지명에 관한 서울의 역사가 녹아있다. 1933년부터 서울역 앞 동자동에서 설렁탕을 팔기 시작한 1대 김희준 씨는 6.25전쟁으로 지금의 논산훈련소 자리까지 피난을 갔다가 그곳에서도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상경한 이후에는 남대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잼배옥 간판을 올리고 운영을 하였다. 1982년 김희준 씨가 별세하자 아들 김현민 씨가 대를 이었고, 아버지를 따라 주방에 들어가 육수를 배우기 시작하였던 아들 김경배 씨가 1997년 이후에는 부인 윤경숙 씨와 함께 3대째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잼배옥의 설렁탕은 가마솥 불을 끄지 않는다. 24시간 내내 가동한다. ‘씨육수’를 그대로 보존해서 새로운 탕에 섞어서 계속 끓인다. 설렁탕의 진한 국물 맛을 위해서다. 잼배옥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흑백사진이 하나가 걸려있다.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속 사진작가였던 1대 김경배 씨의 큰 아버지가 증축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1960년대 초 서울역 앞 지금의 대우빌딩 뒤편에 건물을 올려 새롭게 물을 연 잼배옥의 모습이다. 이 밖에 종근당 이종근 회장이 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 잼배옥. 해방이후 서울시민들의 먹거리 중 하나인 설렁탕으로 맛에 대한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미래유산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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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37.5626692201883 · 경도 126.973564452854

출처: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 인증 2020-017, futureheritage.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