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주말이면 가벼운 옷차림의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르는 아차산. 저도 처음엔 그저 서울 동쪽의 야트막한 동네 뒷산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능선의 발밑에는, 1,500년 전 국경을 사이에 두고 숨죽이던 병사들의 흔적이 겹겹이 묻혀 있습니다.
이야기는 4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했습니다. 지금의 서울 송파·강동 일대에 있던 풍납토성(북성)은 단 7일 만에 함락됐고, 몽촌토성(남성)도 곧 무너졌습니다. 도망치던 백제 개로왕은 아차산성 아래서 붙잡혀 목숨을 잃었고, 백제는 결국 한성을 잃고 웅진, 지금의 공주로 도읍을 옮겨야 했습니다. 한강을 사이에 둔 삼국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뒤바뀐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고구려는 80여 년간 한강 유역을 지배하게 됩니다. 처음엔 갓 빼앗은 몽촌토성에 그대로 주둔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왜 얼마 지나지 않아 몽촌토성을 떠나 아차산으로 거점을 옮겼을까요. 답은 지형에 있습니다. 몽촌토성은 낮은 평지에 자리한 성이라 시야가 제한적이었던 반면, 아차산·용마산·망우산·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정상에 서면 강 건너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즉 얼마 전까지 백제의 도읍이었던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6세기 무렵 고구려가 이 능선을 따라 20여 개의 보루, 즉 작은 요새를 촘촘히 쌓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빼앗은 땅을 지키는 동시에, 빼앗긴 백제가 다시 넘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최전선이었던 셈입니다.
1990년대 이뤄진 본격적인 발굴에서는 이 보루들 안에서 온돌과 저수시설, 대장간 흔적, 그리고 다량의 철기와 토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단순한 감시 초소가 아니라, 병사들이 실제로 이 산 위에서 밥을 짓고 잠을 자고 무기를 벼리며 살아가던 생활 공간이었다는 뜻입니다. 고구려의 옛 영토 대부분이 지금의 북한과 만주 땅에 걸쳐 있어 직접 발굴하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휴전선 남쪽에서 이렇게 온전한 형태로 확인된 고구려 군사 유적은 흔치 않습니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국경을 지키던 병사들의 하루하루가, 지금의 등산로 아래 그대로 잠들어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80년 가까이 이어지던 최전선은 551년, 백제와 신라 연합군의 공격 앞에 무너집니다. 고구려는 결국 이 능선에서 물러났고, 한강 유역은 다시 백제와 신라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
지금 아차산·용마산·망우산·수락산 일대에서는 모두 29개소의 보루가 확인됐습니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자주 만나는 완만한 둔덕들 중 상당수가, 실은 1,500년 전 병사들이 강 건너를 노려보던 초소 자리입니다. 다음에 이 능선을 오르실 일이 있다면, 발밑에 잠든 80년의 최전선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