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12.5m, 임금 행렬에 맞춘 돌다리

창덕궁 금천교 · 태종 11년(1411) 3월의 어구

금천교 상면은 길이 12.9미터, 너비 12.5미터입니다. 거의 정사각형입니다. 이 폭은 무엇에 맞춘 숫자일까요.
창덕궁 금천교 근경
창덕궁 금천교 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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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해 궐 안으로 들어가면, 안쪽 진선문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돌다리 하나를 만납니다. 금천교입니다. 궁 밖의 세상과 임금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르는 경계이자, 궐 안을 흐르는 물길을 건너는 다리이죠.

이 터에 다리가 처음 놓인 것은 조선 태종 11년, 1411년 3월입니다. 창덕궁이 처음 창건되고 나서 불과 6년이 지난 때입니다. 태종은 새 나라의 궁궐 체제와 정통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궁 북쪽에서 시작된 명당수는 남쪽으로 흘러, 돈화문 오른쪽을 지나 궐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이 물길을 금천이라 불렀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만나러 들어갈 때, 사악함을 씻어 낸다는 이 물길을 건너 진선문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 어구 위의 돌다리가 금천교입니다.

폭이 넓은 이유를 숫자로 보면 분명합니다. 상면 길이가 12.9미터, 너비가 12.5미터입니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습니다. 이 폭은 우연히 커진 치수가 아닙니다. 의장을 갖춘 국왕의 정식 행차에서, 행렬 전체인 노부의 폭에 딱 맞춘 수치입니다. 왕의 행렬이 흐트러지지 않고 이 다리를 지나가도록, 조선 초기에 계획해 놓은 크기입니다. 물가에는 화강석을 6단에서 7단으로 가지런히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다리의 뼈대를 올렸습니다.

창덕궁 금천교
창덕궁 금천교
출처: 위키백과「창덕궁 금천교」

태종 대에 놓인 금천교는 그 뒤 조선이 걸어온 시간과 같이 남았습니다. 창덕궁은 500여 년 동안 수많은 화재와 전란을 겪었습니다. 임진왜란을 비롯한 변란으로 화염이 궐 안을 덮쳤고, 목조로 지은 전각은 재가 되곤 했습니다. 궐의 주인이 바뀌고, 전각은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사이 제자리를 지킨 것이 진선문 밖 물길 위의 금천교입니다. 불길이 궐을 삼키고 건물이 타 형태를 잃을 때도, 태종 11년에 화강석을 다듬어 놓은 이 돌다리는 뼈대를 잃지 않았습니다. 1411년의 형태와 구조를 600년이 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남은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태종이 궐로 들어오는 길을 가다듬으며 놓은 다리가, 전각이 사라지고 다시 서는 동안에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

금천교는 국가 지정 보물로, 관람객을 맞습니다. 돈화문에서 진선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 다리 위를 지나갑니다.

화재와 전란으로 궁의 전각이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1411년에 조성된 금천교는 불룩한 곡면의 바닥과 화강석 축대를 유지한 채 물길 위에 있습니다. 축대는 6단에서 7단입니다. 상면은 길이 12.9미터, 너비 12.5미터로, 창건 때의 넓은 폭이 남아 있습니다.

폭이 길이만큼 넓은 이유는 경관이 아닙니다. 의장을 갖춘 국왕 행차의 노부, 곧 행렬 전체의 폭에 맞춘 치수입니다. 600년이 넘은 궁궐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다리가, 그 숫자를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 금천 위의 이 다리가 놓인 해는 태종 11년 1411년 3월, 창덕궁 창건 6년 뒤입니다. 궁 북쪽 명당수가 남쪽으로 흘러 돈화문 오른쪽으로 빠지는 물길을 금천이라 했고, 신하는 그 물을 건너 진선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상면은 길이 12.9미터, 너비 12.5미터. 물가 축대는 화강석 6단에서 7단입니다. 임진왜란을 비롯한 화재와 전란으로 목조 전각은 여러 번 재가 됐지만, 1411년의 돌다리는 창건 때의 형태를 남겼습니다. 바닥은 불룩한 곡면입니다. 그래서 현존하는 궁궐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지금은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넓은 폭의 답은 국왕 행차 노부입니다. 500여 년 동안 전각은 다시 지어졌고, 다리의 화강석 뼈대는 같은 어구에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금천교는 언제 놓였나요?
태종 11년(1411) 3월, 창덕궁 창건 6년 뒤에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습니다.
궁궐 돌다리 가운데 어떤 위치인가요?
화재와 전란 속에서도 창건 당시 모습을 간직해, 현존하는 궁궐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폭이 넓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장을 갖춘 국왕 행차 때 노부(행렬)의 폭에 맞춘 치수라, 상면 길이 12.9m·너비 12.5m입니다. 물가 축대는 화강석 6단에서 7단입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 「창덕궁 금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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