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대한민국 최초의 기생 요리집 명월관이 있던 자리에 왜 신문사 사옥이 들어섰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1920년 봄 종로구 화동으로 시간을 돌려야 합니다.
널빤지와 양철판으로 얽은 7년의 화동 시절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사는 서울 종로구 화동의 옛 중앙학교 교사를 빌려 신문을 창간했습니다.
편집국장을 지낸 설의식은 1930년에 남긴 회고글에서 창간 당시 사옥의 열악한 모습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늙은 소나무가 늘어선 막바지 터전에 고가 두세 채가 있었고, 그 사이 공간에 널빤지와 양철판을 얽어 만든 방이 편집국이었습니다.
고옥의 이모저모를 뜯어고쳐 사장실, 편집국, 영업국, 공장을 어설프게 마련한 공간이었습니다. 이 허름한 건물에서 신문 발행이 7년 동안 이어졌죠.
임대 사옥을 벗어나기 위해 동아일보는 새 전용 사옥 부지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총독부를 감시하려 선택한 황토현 터
동아일보가 점지한 새 사옥 부지는 경성 중심지인 황토현,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였습니다.
이곳은 당시 남산에서 광화문으로 이전한 조선총독부 건물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였습니다. 신문사는 총독부의 권력을 바로 앞에서 감시하겠다는 목적을 품고 이 땅을 매입했습니다.
사옥 부지에는 본래 대한민국 최초의 기생 요리집인 명월관이 있었습니다. 명월관은 덕수궁의 마지막 궁중 요리사 출신인 안순환이 문을 연 2층 회색 양옥 건물이었죠. 불에 타 사라진 명월관과 그 주변 부지를 사들여 사옥 건립에 들어갔습니다.
1926년 12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및 벽돌 구조 전용 사옥이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외벽에는 석재와 타일, 인조석을 붙여 마감했습니다. 1층 현관 입구에서 옥탑까지 수직으로 매끈하게 튀어나온 내민창을 설치했습니다. 내민창은 벽면 밖으로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창문 구조로, 1920년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모더니즘 건축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적 특징이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의 중심에 들어선 이 사옥은 총독부를 직시하는 언론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방송국 개국과 미술관으로의 변신
광화문 사옥은 세월에 따라 모습을 조금씩 바꿔갔습니다.
1963년 4월, 이 사옥 건물에서 동아방송이 첫 라디오 방송을 개국했습니다. 방송국 개국과 맞물려 증개축이 진행되었고, 1968년에는 건물이 지상 6층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창간 직후부터 66년 동안 신문을 찍어내던 이 사옥은 1992년 본사가 중구 충정로1가로 이전하면서 언론사 사옥으로서의 임무를 마쳤습니다.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1994년, 인촌 김성수의 아들이자 동아일보 명예회장인 김상만의 호 '일민'을 따서 '일민문화관'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어 1996년에는 '일민미술관'으로 명칭을 정립해 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변모했죠.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대규모 보수 및 증축 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내부 구조는 현대적으로 탈바꿈했으나 외관과 일부 내부 공간은 1920년대 원형을 유지했습니다.
화동의 널빤지 방에서 시작해 명월관 터에 총독부를 감시하려 세운 사옥은, 그렇게 오늘날 도심 속 미술관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를 나오면 곧바로 일민미술관 건물이 나타납니다.
지상 5층 규모로 재정비된 이 건물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1920년대 근대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구입니다. 현관 위에서 옥탑까지 수직으로 길게 이어지는 내민창과 석재 및 타일로 마감된 외벽은 준공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미술관으로 기능은 바뀌었지만, 1926년에 세워진 건축물의 외형은 광화문 한복판에 100년 가까운 시간을 고스란히 멈춰 세워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