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5년의 법궁 안에, 세종은 물시계와 간의대를 두었다

경복궁 · 정도전의 이름, 세종의 집현전, 1867년의 중건

1395년에 법궁이 섰습니다. 세종은 그 안에 집현전, 보루각, 간의대, 흠경각을 두었습니다. 1592년에 불타고, 1867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설경
경복궁 근정전 설경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경복궁 근정전 설경(2012.2.1 촬영, 문화재청)'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1395년, 태조 4년입니다. 고려를 뒤로하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태조가 조선 제일의 법궁을 세웁니다. 임금이 머물며 나랏일을 보는 으뜸 궁궐입니다. 이름을 지은 사람은 정도전입니다. 『시경』의 구절을 가져옵니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 여기서 따온 두 글자가 경복(景福)입니다. 왕과 백성,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이름입니다.

1412년, 태종이 궁 안 연못을 넓힙니다. 가운데 인공 섬 위에 경회루를 세웁니다. 임금과 신하가 잔치를 열고 국정을 논하며, 외국 사신을 대접하던 연회 장소입니다.

경복궁
경복궁
출처: 위키백과「경복궁」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 머물며 나랏일을 봤습니다. 경회루 남쪽 궐내각사 권역에 집현전을 세웁니다. 학자들을 가까이 두고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게 한 자리입니다. 집무 중에 걸어 나가 토론하던 공간이 궁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과학 시설도 궁 안에 둡니다. 경회루 남쪽에는 보루각이 있습니다. 시각을 재어 온 나라에 알리는 자동 물시계 시설입니다. 궁 서북쪽 모퉁이에는 간의대가 있습니다. 별자리와 천체를 보던 관측대입니다. 궁 안에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옥루기륜을 설치합니다. 시각과 사계절의 변화를 기계 장치로 보여 주는 장치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은 창덕궁, 창경궁과 함께 탑니다. 간의대, 보루각, 흠경각도 불 속에 사라집니다. 법궁이었는데도 그 뒤 약 270여 년 동안 다시 세우지 못했습니다. 빈 터로 남아 있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웁니다.

Aerial View of Gyeongbokgung, 1965
Aerial View of Gyeongbokgung, 1965
출처: 위키백과「경복궁」

연도만 이으면 이렇습니다. 1395년 태조의 법궁, 정도전의 경복. 1412년 태종의 경회루. 세종 대의 집현전·보루각·간의대·흠경각. 1592년 전소. 1867년 중건. 지금 걷는 전각의 틀은 1867년 이후에 다시 세운 것입니다. 물시계와 간의대가 있던 자리는 경회루 남쪽과 서북쪽 모퉁이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1395년은 태조 4년입니다. 한양 천도 뒤 세운 조선 제일의 법궁입니다. 정도전은 『시경』에서 이름을 뽑습니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 경(景)과 복(福)이 그 문장에 있습니다. 왕과 백성과 새 나라가 큰 복을 누리라는 이름입니다.

1412년 태종은 연못을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올립니다. 신하와 잔치를 하고, 외국 사신을 대접하던 국가 연회 장소입니다. 세종은 주로 이 궁에 머물렀습니다. 경회루 남쪽 궐내각사에 집현전을 두고 학자를 불러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게 합니다. 집무 중에 걸어 나가 토론하던 거리입니다.

같은 궁 안에 관측과 시각 시설이 있습니다. 보루각은 경회루 남쪽의 자동 물시계입니다. 시각을 재어 나라에 알리던 시설입니다. 간의대는 서북쪽 모퉁이의 관측대입니다. 별과 천체를 보던 자리입니다. 흠경각 안의 옥루기륜은 시각과 사계절을 기계로 보여 주던 장치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함께 탑니다. 간의대와 보루각, 흠경각도 불 속에 없어집니다. 그 뒤 약 270여 년은 빈 터입니다. 1867년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죠. 법궁의 이름과 과학 시설의 자리는 1395년과 세종 대에 있고, 지금 전각의 뼈대는 1867년 중건 이후입니다. 집현전은 경회루 남쪽 궐내각사, 보루각도 경회루 남쪽, 간의대는 서북쪽 모퉁이, 옥루기륜은 흠경각 안입니다. 1592년에 그 시설이 궁과 함께 탔습니다.

지금

지금 경복궁은 흥선대원군 때 다시 세운 틀 위에 복원된 모습입니다. 근정전 뒤, 경회루 남쪽 궐내각사와 서북쪽 모퉁이가 세종 대 시설이 있던 쪽입니다. 경회루 연못은 1412년 태종이 넓힌 자리입니다.

이 궁이 왕의 집이기만 한지에 대한 답은 기록의 배치에 있습니다. 1395년의 법궁 안에 세종이 집현전과 보루각, 간의대, 흠경각을 두었고, 그 시설은 1592년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1867년에 다시 선 것은 궁의 건물이고, 물시계와 관측대는 그 남쪽과 서북쪽에 있던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정도전의 경복은 1395년의 이름이고, 태종의 경회루는 1412년의 연회 자리이며, 세종의 집현전·보루각·간의대·흠경각은 그 사이 궁 안에 있던 연구와 관측의 시설입니다. 임진왜란의 불은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경복궁을 태웠고, 빈 터로 약 270여 년이 지난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습니다. 보루각의 장치는 자동 물시계이고, 흠경각의 장치는 옥루기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정도전이 『시경』의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따와 경복(景福)이라 지었습니다.
세종 때 궁 안에 무엇을 두었나요?
집현전, 자동 물시계 시설인 보루각, 천문 관측대인 간의대, 옥루기륜을 둔 흠경각이 있습니다.
불탄 뒤 언제 다시 세웠나요?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약 270여 년 빈 터로 있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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