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공의 기록은 855년, 기단의 탱주는 600년대 말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 가람 확장과 무구정탑원기

하층기단 면석에는 돌마다 탱주가 3개입니다. 사리공에서 나온 《무구정탑원기》는 그보다 훨씬 늦은 855년, 신라 문성왕 대를 가리킵니다.
경주 남산 창림사지 전경
경주 남산 창림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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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남산의 창림사지는 빈터로 보이기 쉽습니다. 발굴은 다른 평면을 보여 줍니다. 불국사처럼, 통일신라 가람에서 나타나는 층별 독립 공간이 여기에도 있었습니다. 높낮이에 따라 구역을 나누고, 각 공간이 따로이면서 이어지게 배치한 형식입니다.

절은 커졌습니다. 원래 가람 밖에 영역이 더해졌습니다. 그 확장 영역의 중심에 세운 것이 이 삼층석탑입니다. 팔부신중을 조각한 탑입니다.

2중 기단의 하층 면석을 보면, 각 돌마다 기둥 모양 장식인 탱주가 3개입니다. 기단 탱주의 수는 석탑 시기를 보는 지표로 쓰입니다. 개수가 많을수록 더 이른 양식으로 봅니다. 이 3개는 통일신라 초기, 600년대 말 석탑 변천의 단서입니다.

하층기단 석재는 모두 10개입니다. 황복사탑과 장항리탑은 기단을 8개 석재로 조성했습니다. 10개인 이 기단은 그 탑들보다 고식에 가깝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양식이 바뀌어 가는 과정의 실물입니다.

양식만으로 통일신라 초기를 이어 받았다고 보아 온 탑의 연대는, 탑 안에서 좁혀졌습니다. 창림사지에 남아 있던 석탑 중 하나의 사리공에서 《무구정탑원기》가 나왔습니다. 그 기록으로, 이 탑은 신라 제46대 문성왕 대인 855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855년 무렵, 넓어진 창림사 영역에 탑을 세우면서 사리공에 탑의 내력과 기원을 적은 원기를 넣었습니다. 기단은 600년대 말의 고식을 잇고, 탑을 올린 시점은 문성왕 대로 적힌 셈입니다.

상부기단 면석에는 탱주 1구를 두고, 그 사이에 팔부신중상을 양각했습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입니다. 아래 기단의 예스러운 격식 위에, 위 기단의 팔부신중이 있습니다. 2중 기단 위에는 3층 탑신이 있습니다.

기단의 시간과 기록의 시간을 나눠 보면 이 탑의 핵심이 보입니다. 하층기단 면석의 탱주는 돌마다 3개입니다. 탱주가 많을수록 이른 양식으로 보는 기준에서, 3개는 통일신라 초기인 600년대 말을 가리킵니다. 하층기단을 이루는 석재는 10개입니다. 황복사탑과 장항리탑은 기단 석재가 8개입니다. 10개인 이쪽이 그 탑들보다 고식에 가깝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석탑 양식이 바뀌는 과정의 실물로 남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탑을 세운 해는 기단 양식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창림사지 석탑의 사리공에서 《무구정탑원기》가 나왔습니다. 그 기록은 신라 제46대 문성왕 대, 855년경을 가리킵니다. 양식으로 통일신라 초기를 이어 받았다고 보아 온 탑에, 조성 시점을 적은 글이 들어간 것입니다. 855년 무렵 창림사의 영역은 이미 처음보다 넓어져 있었습니다. 확장된 구역의 중심에 이 삼층석탑을 세우고, 사리공에 내력과 기원을 적은 원기를 넣었습니다.

위층 기단은 아래와 조각이 다릅니다. 면석에 탱주 1구를 두고, 사이에 팔부신중을 양각했습니다.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입니다. 아래는 600년대 말의 격식을 보여주는 탱주 3개, 위는 팔부신중, 그 위에 3층 탑신. 발굴은 절의 평면까지 보여 줍니다. 불국사에서 보이듯 통일신라 가람의 층별 독립 공간이 창림사지에도 있습니다. 지형의 높낮이로 구역을 나누고, 각 공간이 따로이면서 이어집니다. 탑은 그 원래 구역 안이 아닙니다. 나중에 더해진 확장 영역의 중심입니다.

지금

법당은 없고 탑은 남산 창림사지에 있습니다. 하층기단의 탱주 3개와 석재 10개는 600년대 말 고식을 보여 줍니다. 사리공의 《무구정탑원기》는 조성 시점을 문성왕 대, 855년경으로 적습니다.

탱주가 가리키는 양식의 시간과, 원기가 가리키는 조성의 시간은 같지 않습니다. 이른 기단 형식을 유지한 채, 855년경 확장된 가람에 탑을 올렸다는 것이 이 돌과 기록이 같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하층은 돌마다 탱주 3개, 석재 10개로 600년대 말의 고식입니다. 황복사탑과 장항리탑의 기단 석재 8개보다 옛 형식에 가깝다는 견해입니다. 상부기단의 팔부신중은 그 위에 양각되어 있습니다. 사리공의 《무구정탑원기》가 문성왕 대 855년경을 적어, 양식의 시간과 조성의 시간을 갈라 보여 줍니다. 발굴이 확인한 층별 독립 공간 가운데, 이 탑은 나중에 더해진 영역의 중심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언제 조성됐나요?
사리공의 《무구정탑원기》로 신라 문성왕 대, 855년경으로 추정합니다.
하층기단 탱주 3개는 무엇을 보여 주나요?
돌마다 3개입니다. 600년대 말 통일신라 초기 석탑의 고식 단서로 봅니다. 하층기단 석재는 10개입니다.
가람은 어떤 배치였나요?
발굴에서 불국사 등 통일신라 가람의 층별 독립 공간이 확인되었습니다. 삼층석탑은 가람이 확장되며 더해진 영역에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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