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30년대 전통 한옥 안에는 어떻게 실내 화장실과 긴 복도, 응접실이 들어앉게 되었을까요?
1930년대 서울 경운동의 한 대지 위에 한 아버지가 집을 지었습니다. 두 아들에게 한 채씩 똑같이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건축주는 당시 경운동 66-8번지에 있던 정순주 가옥과 똑같은 평면 구조로 두 채의 집을 구상했습니다. 정순주 가옥이 뒷채가 되고, 이 집이 앞채가 되는 배치였습니다.
집의 설계를 맡은 인물은 일제강점기의 건축가 박길용(1898∼1943)으로 전해집니다. 1898년에 태어난 박길용은 근대적 건축 기술을 익혀 당대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고, 1943년 세상을 떠나기 전 1930년대 주거 문화의 변모를 이 가옥에 담았습니다.
두 아들을 위한 쌍둥이 평면과 H자형 배치
네모반듯하게 정리된 집터 동쪽에 대문이 서 있습니다. 대문을 지나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남향으로 자리 잡은 H자형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통적인 한옥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공간의 배치는 매우 효율적으로 정돈되었습니다.
건물의 중심축에는 부엌과 대청, 건넌방, 사랑방이 나란히 놓였습니다. 부엌의 앞쪽으로는 안방이 붙어 있고, 뒤쪽으로는 뒷방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방과 방 사이에는 반칸 너비의 툇마루를 길게 내어 집 안에서의 이동을 매끄럽게 연결했습니다.
두 아들에게 똑같이 주고자 했던 집인 만큼 공간 활용에 공을 들였습니다. 건넌방은 규모를 크게 꾸며 또 하나의 사랑방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한옥 벽면 속 들어앉은 긴 복도와 유리창
이 집은 대표적인 개량한옥입니다. 개량한옥이란 전통 한옥 양식에 근대적인 현관, 유리창, 긴 복도, 실내 위생시설을 결합하여 지은 20세기 초중반의 주택 형태를 뜻합니다.
사랑방의 앞쪽에는 전통적인 누마루를 두었지만, 뒤쪽에는 근대식 현관마루를 놓았습니다. 현관마루와 바로 연결되는 사랑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 용도로 쓰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전통 가옥에서 남성들의 전용 공간이었던 사랑방이 근대적인 소통과 교류의 장소로 바뀐 셈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습니다. 재래식 측간과 목욕 공간을 밖에 두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현관과 화장실, 목욕탕을 모두 건물 안에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들을 한 번에 연결하는 긴 실내 복도를 설치했습니다.
창문마다 투명한 유리창을 달아 채광을 높였습니다. 툇마루와 긴 복도,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안방과 응접실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전환기에 전통 한옥이 근대적 삶의 양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 집 안에 고스란히 들어앉았습니다.
지금
경운동 가옥에는 남향으로 배치된 H자형 건물 구조와 반칸 너비의 툇마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1930년대 개량한옥의 특징이었던 화장실, 목욕탕, 이들을 연결하던 긴 복도와 유리창의 흔적이 잘 간직되어 있죠.
국가유산청은 2015년 현장 조사를 진행하며 경운동 민병옥 가옥의 원경과 내부 배치를 사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경운동 66-8번지 정순주 가옥과 앞뒤로 나란히 기획되었던 이 가옥은 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위해 지었던 근대기 주거 생활의 실상을 오늘도 증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