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12년, 일본인 시키 신타로가 흑석동 한강변 언덕에 신사를 세웠습니다. 이 언덕은 원래 조선시대부터 마을의 당(堂)과 신목(神木)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마을을 지켜주던 신앙의 자리 위에, 낯선 나라의 신사가 대신 들어선 셈입니다. 신사는 한강신사, 또는 노량진웅진강신사·신명신사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일제는 조선 곳곳에 이런 신사를 세우고 참배를 장려하다가, 전쟁이 본격화되자 이를 강요로 바꿔 나갔습니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로는 이 한강신사 인근에 살던 조선인들에게도 참배가 강요됐습니다. 일본 천황을 향해 절하도록 만들어진 신사였던 셈입니다.
광복이 되자 주민들은 곧바로 이 신사를 스스로 헐어버렸습니다. 강요당했던 참배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한 빠른 철거였습니다. 6·25전쟁 때는 국군의 작전지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엔 무엇이 있을까요. 1993~94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으로 이 자리에 '효사정'이라는 정자가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효사정 동쪽 입구에는 조금 뜻밖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흑석동 출신 소설가 심훈의 동상과 시비입니다.
심훈은 항일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상록수》를 쓴 작가입니다. 일본 천황에게 절하라고 강요하던 신사가 있던 바로 그 언덕에, 지금은 일제에 맞선 문인이 서 있는 것입니다. 신사가 강요한 굴복의 자리가, 굴복하지 않은 사람을 기리는 자리로 뒤바뀐 셈입니다.
지금
지금 이 언덕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신사도 참배객도 없습니다. 대신 심훈의 동상이 조용히 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의 효사정이 일제강점기 이전 원래 효사정과 정확히 같은 자리인지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그럼에도 이 언덕이 지나온 두 이름 — 강요된 참배의 신사와, 스스로 지켜낸 문인의 자리 — 은 지금도 같은 좌표 위에 겹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