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산사로 간 9명의 학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다듬다

화계사 ·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자리

1933년, 이희승과 최현배를 비롯한 국문학자 9명이 북한산 자락 화계사에 머물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 원고를 써 내려갔습니다.
화계사대웅전
화계사대웅전
출처: 국가유산청

이야기

1933년, 북한산 자락의 화계사로 9명의 남자가 들어섰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불경이 아니라 원고지와 먹물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기 위해 모인 국문학자들이었습니다. 이희승과 최현배를 비롯한 9명의 학자는 한자리에 머물며 글자 하나, 소리 하나를 다듬었습니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표기를 하나로 정립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쓰던 맞춤법을 체계화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것인지, 문법적 원형을 밝혀 적을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학자들은 외딴 산사였던 화계사에 기거하며 집필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조용한 사찰에 자리를 잡고 조항 하나하나를 검토했습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 체계, 받침 표기 규정, 띄어쓰기 기준까지 세밀하게 논의를 거쳐 원고를 적어 나갔습니다.

이곳 화계사에서 진행된 집필 작업을 거쳐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책과 문장에서 사용하는 한글 표기법의 기초가 바로 이 북한산 골짜기 사찰에서 정리된 것입니다.

학자들이 머물렀던 화계사 마당 한쪽에는 1870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이 서 있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얹은 이 대웅전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를 놓은 다포양식 건물입니다. 학자들은 대웅전 건물을 지나치며 머리를 식히고 다시 원고지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화계사
화계사
출처: 위키백과

지금

화계사 대웅전은 고종 7년인 1870년에 건립되어 현재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다포양식의 공포와 팔작지붕은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33년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기거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했던 유서 깊은 역사가 이 절터에 새겨져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1933년 화계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명이 화계사에 기거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 원고를 집필했습니다.
화계사 대웅전은 언제 지어졌나요?
조선 고종 7년인 1870년에 새로 지어졌습니다.
화계사 대웅전의 건축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다포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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