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종로구 훈정동의 종묘는 조선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입니다. 지금 정전 옆에 영녕전이 있는 배치는, 태조가 처음 완공한 해의 평면이 아닙니다.
1395년의 정전, 네 추존왕
태조 3년(1394)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가장 먼저 착공한 공간 가운데 하나가 종묘입니다. 이듬해 태조 4년(1395)에 완공되었습니다. 태조는 4대 조상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왕으로 추존하여 정전에 모셨습니다. 그때의 정전은 이 네 추존왕과 태조를 모시도록 잡힌 신실이었습니다.
2대 임금 정종이 세종 3년(1421)에 서거하자 신위를 정전에 모셔야 했습니다. 신실이 모자랐습니다. 세종은 송나라 제도를 참고해 정전 옆에 영녕전을 새로 세웠습니다. 이름은 조상과 후손이 영원히 평안하라는 뜻을 담습니다. 1421년 영녕전이 완성되자, 정전에 있던 목조·익조·도조·환조의 신위를 영녕전으로 옮겼습니다. 정전에는 조선을 직접 통치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두고, 영녕전에는 추존왕과 정전에서 옮겨진 왕의 신위를 두는 체계가 되었습니다.

1592년의 화재, 1608년의 재건
1592년 임진왜란으로 한양이 함락되고, 태조 때 이래의 정전과 영녕전이 모두 불탔습니다. 선조 때 재건 논의가 시작되어 1608년에 두 건물을 원래 터에 다시 지었습니다. 그 뒤 왕과 왕비의 신위가 늘면서 여러 차례 증축되었습니다. 정전은 지금 19칸이고, 영녕전은 16칸의 신실입니다. 정전에는 19분의 왕과 30분의 왕후, 영녕전에는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가 모셔져 있습니다.
영녕전에는 고종의 아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영친왕)과 황태자비의 신위도 함께 있습니다. 1395년 네 추존왕으로 시작한 사당이,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부부의 신위까지 잇습니다.

사직단, 종묘와 짝을 이룬 제례
종묘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공간이라면, 한양 도성 안에는 그와 짝을 이루는 국가 제례의 터가 있습니다. 사직단입니다. 국가유산청 기록에 따르면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사직단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사직단 대문은 태조 3년의 정문으로 전합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두고,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습니다. 제사는 2월과 8월, 동지, 섣달 그믐에 지냈습니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가뭄에 비를 비는 기우제, 풍년을 비는 기곡제도 여기서 거행되었습니다.
종묘는 종로구 훈정동에 있고, 사직단은 종로구 사직동 일대에 있었습니다. 한양 천도 직후 국가 의례는 왕실 제사와 토지·곡식 제례로 나뉘어 세워진 것입니다. 1902년 사직단과, 그 임무를 맡던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으며,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입니다.
연도를 한 줄로 다시 놓으면
1394년 태조 3년, 한양 천도와 함께 종묘가 착공됩니다. 궁궐·종묘와 같이 사직단도 만들어졌고, 사직단 대문은 태조 3년의 정문으로 전합니다. 1395년 정전이 완공되고, 목조·익조·도조·환조가 추존되어 정전에 모셔집니다. 1421년 세종 3년, 정종이 서거하자 그 신실이 모자랍니다. 세종은 송나라 제도를 참고해 영녕전을 세우고, 네 추존왕을 옮깁니다. 이름은 영원히 평안하라는 뜻입니다. 정전은 통치한 왕과 왕비, 영녕전은 추존왕과 옮겨진 왕의 신위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정전과 영녕전이 불탔습니다. 선조 때 재건을 논의해 1608년에 원래 터에 다시 짓습니다. 증축 뒤 정전은 19칸, 영녕전은 16칸입니다. 정전에 왕 19분·왕후 30분, 영녕전에 왕 15분·왕후 17분. 영녕전은 고종의 아들 이은, 영친왕과 황태자비의 신위까지 모십니다. 훈정동의 종묘는 사적이고, 1995년 세계유산입니다. 정전·영녕전은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 가운데 연건평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꾸밈은 검소합니다.
사직의 배치는 국사단이 동쪽, 국직단이 서쪽, 신좌는 북쪽입니다. 제사 달은 2월과 8월, 동지, 섣달 그믐입니다. 큰일, 기우제, 기곡제가 여기서 치러졌습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서가 옮겨지고, 격이 낮아져 공원이 되었으며, 1940년의 사직공원이 옛 자리입니다. 1421년의 빈 신실이 영녕전을 만든 이유이고, 그 짝의 제례 터는 사직동의 사직단입니다.
지금
훈정동의 종묘는 사적으로 보호되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정전과 영녕전은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물 가운데 연건평이 세계에서 가장 큽니다. 꾸밈은 검소합니다. 사직동의 옛 사직단 자리는 사직공원입니다. 같은 도성 안에서 왕실 제사의 터와 토지·곡식 제례의 터가 오늘날은 사당과 공원으로 나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