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394년 조선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남산 정상에 봉수대가 들어섰습니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불렀고, 서울에 있는 중앙 봉수대라는 의미로 '경봉수(京烽燧)'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조선 전국의 변방에서 보내오는 봉수 신호는 크게 다섯 개의 주요 도로망을 통해 남산으로 모였습니다. 이 주요 간선 노선을 '직봉(直烽)'이라고 부릅니다. 전국의 1로부터 5로까지 직봉 노선을 따라 매일 전달된 신호가 도착하는 최종 도착지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변방의 소식은 불과 연기의 개수로 구분되어 남산에 이르렀습니다.
평상시에는 1개의 불이나 연기를 올렸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선 가까이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면 4개, 아군과 전투가 벌어지면 5개의 불을 피웠습니다. 낮에는 연기를 사용하고, 밤에는 불빛을 이용했습니다.
남산 정상에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총 5개소의 봉수대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연기나 불꽃이 올라오면, 봉수군들은 신호의 개수를 확인한 뒤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 관청인 병조에 보고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전쟁의 혼란 속에 봉수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산 봉수대는 개화기까지 국가의 핵심 통신망 자리를 지켰습니다.
1394년에 설치된 남산 봉수대는 1895년 봉수제가 공식 폐지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작동했습니다. 현대적 근대 통신 시설이 도입되고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5개 봉수대는 철거되었고, 세월과 도시화가 진행되며 정확한 위치 기록마저 희미해졌습니다.

지금
현재 남산 정상에는 고지도인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고증하여 복원한 봉수대 1개소가 서 있습니다.
1993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목멱산 봉수대 터'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산 N서울타워 앞 광장에 남은 봉수대와 안내 표지가 500년 경봉수 체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