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종로 한복판, 낙원상가 밑을 지나가면 건물 1층 아래로 차량들이 그대로 오가는 낯선 광경을 만납니다. 흔히 보는 상가 건물과는 다른, 도로를 통째로 품은 구조입니다.
이야기는 1960년대 서울의 도로 정비에서 시작됩니다. 안국동에서 한남동을 잇는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그 자리에 있던 낙원시장 상인들이 밀려나게 됐습니다. 이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1967년 10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도로 위에 그대로 상가를 짓다니,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도로를 없애는 대신, 도로 위로 건물을 얹는 구조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낙원상가 1층 아래로는 차량이 그대로 지나갑니다. 상인들의 생계와 도심의 도로 기능을 동시에 지키려던,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절충안이었던 셈입니다. 도로 위에 건물을 얹는다는 발상 자체가, 급하게 팽창하던 1960년대 서울의 실험적인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1968년 7월 지하시장이 먼저 문을 열었고, 1970년 12월 상가 겸 아파트 건물이 정식 개장했습니다.
이 상가의 운명을 바꾼 건 다른 곳의 철거였습니다. 1983년 탑골공원 옆 파고다 아케이드가 철거되자, 그곳에 있던 악기 상인들이 낙원상가로 옮겨왔습니다. 쫓겨난 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 또 다른 철거로 밀려난 상인들을 다시 받아들인 셈입니다. 이후 낙원상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악기 상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낙원상가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쫓겨난 상인들을 위해 도로 위에 지은 임시방편 같던 건물이, 반세기 넘게 이어지며 서울의 악기 상권을 대표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다음에 낙원상가 밑을 지나가실 일이 있다면, 발밑으로 지나가는 차들이 실은 이 상가가 살려낸 옛 도로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