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 5층 창문은, 왜 이렇게 좁을까

남영동 대공분실 · 박종철이 숨진 그 방, 지금은 인권기념관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옆,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 5층 창문은 유난히 좁고 깁니다. 아이도 머리를 내밀지 못할 만큼요.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출처: Jjw,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야기

1976년,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가 대공수사 시설로 지은 5층 건물이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옆에 들어섰습니다. 설계는 공간사옥으로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맡았습니다.

건물 안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은 오직 5층에만 문이 나 있습니다. 다른 층에서는 아예 드나들 수조차 없습니다. 5층 창문은 또 유난히 좁고 길게 나 있어, 아이조차 머리를 내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출입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요. 이 5층이 바로 대공수사 취조실이었습니다. 좁은 창문은 조사받던 사람이 스스로 몸을 던지지 못하게 하려는 구조였다고 전해집니다. 나선형 계단은 자신이 몇 층에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어, 방향 감각을 잃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설계가 김수근의 의도였는지, 발주 기관이 요구한 조건이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입니다. 그가 남긴 공간사옥의 명성과 이 건물의 쓰임 사이의 간극은, 건축가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지금도 회자됩니다.

1987년 1월 14일, 바로 이 5층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를 받다 숨졌습니다. 당국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지만, 진실은 물고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좁은 창문 너머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못했던 이 방이, 결국 나라 전체를 뒤흔든 사건의 진원지가 된 것입니다.

지금

이 건물은 2005년까지 경찰청 인권센터로 쓰이다가, 2018년 행정안전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가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문을 열어, 박종철이 조사받던 그 5층 방을 그대로 보존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가두고 고립시키려 계산됐던 건물이, 이제는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리로 쓰이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남영동 대공분실은 누가 설계했나요?
건축가 김수근이 1976년 설계했습니다.
5층 창문이 유난히 좁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사받던 사람이 스스로 몸을 던지지 못하게 하려는 구조였다고 전해지며, 이것이 의도된 설계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지금 이 건물은 어떻게 쓰이나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전환돼 박종철이 조사받던 5층 방을 보존·공개하고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향「남영동 대공분실」, 경향「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가, 김수근은 정말 지옥을 설계했는가」

지도에서 보기 유적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