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76년,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가 대공수사 시설로 지은 5층 건물이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옆에 들어섰습니다. 설계는 공간사옥으로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맡았습니다.
건물 안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은 오직 5층에만 문이 나 있습니다. 다른 층에서는 아예 드나들 수조차 없습니다. 5층 창문은 또 유난히 좁고 길게 나 있어, 아이조차 머리를 내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출입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요. 이 5층이 바로 대공수사 취조실이었습니다. 좁은 창문은 조사받던 사람이 스스로 몸을 던지지 못하게 하려는 구조였다고 전해집니다. 나선형 계단은 자신이 몇 층에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어, 방향 감각을 잃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설계가 김수근의 의도였는지, 발주 기관이 요구한 조건이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입니다. 그가 남긴 공간사옥의 명성과 이 건물의 쓰임 사이의 간극은, 건축가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지금도 회자됩니다.
1987년 1월 14일, 바로 이 5층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를 받다 숨졌습니다. 당국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지만, 진실은 물고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좁은 창문 너머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못했던 이 방이, 결국 나라 전체를 뒤흔든 사건의 진원지가 된 것입니다.
지금
이 건물은 2005년까지 경찰청 인권센터로 쓰이다가, 2018년 행정안전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가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문을 열어, 박종철이 조사받던 그 5층 방을 그대로 보존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가두고 고립시키려 계산됐던 건물이, 이제는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리로 쓰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