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보통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라고 하면 무당이 징과 꽹과리를 울리며 굿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북한산 보현봉 아래 자리한 이 산신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을 모십니다. 굿판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일절 금하고, 마을 선비들의 유교식 제사로 산신을 받듭니다.
이곳은 평창동 보현산신각입니다. 삼각산의 기운이 내려오는 보현봉 기슭에 서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입니다.
건물은 작지만 그 안에 모신 신앙의 내력은 길고 무겁습니다. 산신각 내부 정면에는 청색 도포를 입고 관을 쓴 노인이 호랑이를 타고 있는 '기호노인상(騎虎老人像)' 산신도가 걸려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깃털 부채를 들고 있고, 옆에는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천도복숭아 3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서 있습니다. 한국 고대의 산신 관념을 담아낸 민속 그림입니다.
제단 위에는 자그마한 종이 하나 올려져 있습니다. 그 종에는 '정유년(丁酉年)'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죠.
이 종이 1897년에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1957년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이 산신각을 들러 제를 올리고 관리해 왔음을 증언해 주는 유물입니다.
이곳에 모셔진 산신은 남산신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여기서 서쪽으로 약 600m 떨어진 자리에 여산신을 모시던 여산신각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산신을 부부 관계로 여겼습니다.
옛 평창동 마을 신앙은 남산신각과 여산신각, 그리고 옛 평창 터에 있던 부군당 건물과 신목(神木)까지 세 축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마을 노인들은 매년 음력 2월 초순이 되면 몸가짐이 깨끗한 제관과 임원 7명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음력 3월 1일이 되면 세 곳에서 동시에 동제를 올렸습니다. 동제(洞祭)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주민들이 함께 지내는 공동 제사입니다.
제삿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제단에 올렸습니다.
음악이나 무당의 춤은 없었습니다. 오직 유교식 예법에 따라 엄숙하게 잔을 올리고 절을 했습니다. 제사가 끝나면 삶은 돼지고기를 비롯한 제물을 집집마다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신에게 안녕을 빌고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며 하나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여산신각과 부군당 건물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천제단이 있던 보현봉 아래 자리도 흔적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남산신각인 보현산신각과 부군당 신목은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켜냈습니다. 1973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마을의 옛 신앙 유산으로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평창동 주택가 뒤편 산자락으로 올라가면 맞배지붕 기와집인 보현산신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건물 좌측 뒤편에는 작고 큰 바위들이 쌓여 있고, 왼쪽 10m 앞에는 작은 샘이 흘러나옵니다.
산신각 오른쪽 아래에는 사람 키만 한 바위가 있고, 그 밑에 높이 60cm 정도의 작은 한옥 기와 모양 등각(燈閣)이 놓여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그 등각 안에 촛불을 켜며 가족의 안녕을 빕니다.
마을 신앙의 다른 한 축이었던 부군당 신목도 서울시 보호수 제6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