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칸 청사가 불타고 옮겨지기까지, 삼군부 청헌당의 100년

경복궁 맞은편 삼군부 청사에서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겨진 청헌당

1868년 경복궁 맞은편에 들어선 삼군부 청헌당은 조선 말 전국의 군권을 호령하던 최고 군사 기구의 청사였습니다.
삼군부 청헌당
삼군부 청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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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870년 4월, 경복궁 맞은편에 있던 삼군부 청사에서 불길이 솟구쳤습니다. 이 화재로 건물 79칸이 모두 타서 사라졌죠. 조정은 같은 해 윤 10월에 청사를 다시 지었습니다. 조선 말 전국의 군권을 관장하던 핵심 기구의 청사였기 때문입니다.

삼군부는 원래 조선 초에 군령과 군무를 총괄하던 '의흥삼군부'에서 시작된 관아입니다. 세도정치 기간 동안 국정의 최고 권력을 쥐고 있던 비변사의 세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자, 고종 2년인 1865년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의정부에 통합시켰습니다. 그러고는 비변사의 권력을 누르고 의정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삼군부를 다시 설치했습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훈국의 신영과 남영, 마병소를 합쳐 삼군부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고종 4년인 1867년에는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용호영 등 5개 군문과 전국의 군사권을 모두 삼군부에 통합시켰죠. 삼군부는 대궐 수비와 도성 순찰은 물론 변방의 군사 문제까지 총괄했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일어났을 때 군사권을 행사하며 위세를 떨쳤던 곳도 바로 이 삼군부였습니다.

세도정치를 누르고 군권을 쥐다

고종 5년인 1868년, 삼군부의 청사 건물로 청헌당을 지었습니다. 당시 삼군부 청사는 정청인 총무당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청헌당과 덕의당이 나란히 배치된 구조였습니다. 각 건물 사이는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무신 신관호가 쓴 청헌당 현판
무신 신관호가 쓴 청헌당 현판
출처: 위키백과「삼군부 청헌당」

'淸憲堂(청헌당)'이라고 적힌 현판은 조선 후기의 무신인 신관호가 썼습니다. 신관호는 나중에 신헌으로 이름을 바꾼 인물입니다. 청헌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팔작지붕 양식을 갖추었습니다. 기둥 위에는 새날개 모양의 익공을 짜 올렸는데, 이는 조선 후기 서울 관아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막강한 군권을 휘두르던 삼군부의 위세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개항과 함께 사라진 삼군부

1880년(고종 17년), 개항 이후 조정에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면서 삼군부는 폐지되었습니다. 통리기무아문은 근대적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기구였죠. 삼군부가 사라지면서 청헌당은 통리기무아문의 청사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이전된 삼군부 청헌당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이전된 삼군부 청헌당
출처: 위키백과「삼군부 청헌당」

이후 건물은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주인과 용도를 계속 바꾸었습니다. 1894년(고종 31년) 이후에는 궁궐을 호위하는 시위대 청사로 쓰였습니다. 1910년(순종 4년)부터 1926년까지는 조선 보병대 사령부로 사용되었죠.

경복궁 맞은편 자리를 지키던 청헌당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1967년의 일입니다. 당시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를 신축하면서 청헌당 건물을 서울 노원구의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겨 지었습니다. 조선 말 최고 군사 권부의 청사였던 공간이, 현재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안으로 자리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지금

삼군부 청헌당은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경내에 서 있습니다. 1973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고, 1977년에 수리 공사를 거치며 초기 모습에서 일부 변형이 이루어졌습니다.

건물 정면에는 무신 신관호가 친필로 쓴 '淸憲堂' 현판이 여전히 걸려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와 조선 후기 관아 건축의 익공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죠. 광화문 앞 관아거리에 있던 삼군부 청사 중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며 전해지는 몇 안 되는 건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삼군부는 어떤 기구였나요?
조선 초 군령과 군무를 총괄하던 기구로, 1865년 흥선대원군이 비변사의 세력을 억제하고 군권을 의정부 중심으로 강화하기 위해 다시 설치했습니다.
청헌당은 원래 어디에 있었나요?
원래 경복궁 맞은편(현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었으나, 1967년 정부종합청사를 지으면서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겨졌습니다.
'청헌당' 현판은 누가 썼나요?
조선 후기의 무신인 신관호(신헌)가 직접 썼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 「삼군부 청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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