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싱가포르 본섬 남쪽,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가는 휴양 섬 센토사. 테마파크와 카지노, 하얀 모래 해변으로 이름난 이 섬의 옛 이름은 풀라우 블라캉 마티(Pulau Blakang Mati)였습니다. 말레이어로 '죽음 뒤의 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12일, 북한과 미국 정상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곳도 바로 이 섬이었습니다. 이름에 '죽음'을 달고 있던 섬은 어떻게 '평화'라는 이름을 얻고, 정상회담의 무대가 되었을까요?
'죽음 뒤의 섬'이라는 이름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지금도 정설이 없습니다. 섬 주변에서 해적질과 살인이 잦았다는 설, 이웃 섬 풀라우 브라니에 묻힌 전사들의 혼령이 머무는 곳이라는 설, 바람이 죽은 듯 잔잔한 뒤편 바다를 가리킨 뱃사람들의 말이라는 설이 함께 전해집니다.
가장 구체적인 기록은 질병입니다. 1840년대 섬에 살던 부기스 사람들 사이에 정체 모를 열병이 돌아, 60명가량이던 마을이 두 가구만 남을 만큼 무너졌습니다. 당시 '블라캉 마티 열병'이라 불린 이 병은 훗날 말라리아로 밝혀졌습니다.
항구를 지키는 요새가 되다
19세기 후반, 싱가포르를 차지한 영국에게 이 섬은 케펠 항구와 석탄 저장고를 지키는 길목이었습니다. 1870년대 서라퐁 요새와 임비아 포대, 1878년 코넛 요새, 1880년대 실로소 요새가 차례로 들어섰고, 거대한 해안포들이 모두 바다를 향했습니다.

1942년, 대포는 몸을 돌렸지만
1942년 2월, 일본군은 바다가 아니라 말레이반도를 타고 북쪽 육지로 내려왔습니다. 흔히 '싱가포르의 대포는 바다만 보고 있어서 쓸모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실로소의 포들은 180도 몸을 돌려 서해안과 주롱, 텡가 비행장 쪽 일본군을 향해 실제로 포격했습니다.
문제는 포탄이었습니다. 군함의 두꺼운 철판을 뚫도록 만든 철갑탄이 대부분이라, 땅에 박힌 뒤에야 터지는 포탄은 보병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1942년 2월 15일, 싱가포르는 함락됐습니다.

포로수용소, 그리고 해변으로 떠밀려 온 사람들
함락 뒤 실로소 요새는 천 명이 넘는 영국군과 호주군 포로들을 가두는 수용소가 됐습니다.
같은 시기 일본군은 싱가포르의 중국계 주민들 가운데 '반일 분자'를 가려낸다며 대규모 학살을 벌였습니다. 숙칭(肅淸, Sook Ching)이라 불리는 이 사건 때, 총탄에 맞은 시신 약 300구가 이 섬 해변으로 떠밀려 왔습니다. 그 시신들을 묻은 것은 섬에 갇혀 있던 포로들이었습니다.

'평화와 고요'라는 새 이름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섬은 오랫동안 군대의 땅이었습니다. 영국 포병 부대가 머물렀고, 1967년 싱가포르군에 넘어간 뒤에도 군 시설로 쓰였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섬을 휴양지로 바꾸기로 하고, 싱가포르관광진흥청이 1969년 새 이름을 공모했습니다. 1970년 섬은 센토사(Sentosa)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라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어 '산토샤(만족)'에서 왔습니다. 같은 이름을 써낸 사람이 다섯 명이었다고 합니다. 1972년에는 섬 개발을 맡은 센토사개발공사가 세워졌고, 2010년 리조트월드 센토사, 2011년 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가 문을 열었습니다.
영국 장교 숙소에서 열린 정상회담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곳은 센토사의 카펠라 호텔이었습니다.

이 호텔 한가운데의 붉은 기와 건물 두 동은 1880년대 영국 포병(해안방어사령부) 장교들의 숙소로 지은 것입니다. 보존 건물로 지정돼 원래 모습을 살려 고쳐 쓰고 있습니다. 바다를 겨누던 요새의 장교들이 살던 집에서, 140년 뒤 평화를 말하는 회담이 열린 셈입니다.

이 건물에는 전설도 하나 전해집니다. 1942년 2월 항복 직전, 영국 장교들이 연대의 은식기를 서둘러 장교 식당 앞 잔디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1950년 말레이시아 포트딕슨에서 발견됐지만, 나머지는 지금도 행방을 모릅니다.
지금 이 자리
섬 서쪽 끝의 실로소 요새는 싱가포르에 유일하게 보존된 해안 요새로, 포대와 터널, 항복의 방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카펠라 호텔은 영업 중인 호텔이라 투숙객이 아니면 안쪽을 자유롭게 볼 수는 없습니다. 테마파크와 해변 사이를 걷다 보면, 이 섬이 한때 '죽음 뒤의 섬'이었다는 사실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요새에서 포로수용소로, 그리고 평화의 이름을 단 섬에서 평화 회담까지. 이름은 바뀌었지만, 같은 자리는 다른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