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병원, 2년 뒤 총독부의원이 되다

서울 대한의원 · 1908년 함춘원 언덕, 시계탑이 남은 본관

1908년 함춘원 언덕에 완공된 대한의원은, 2년 뒤인 1910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우측면/문화재청
우측면/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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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서울대학교병원 안쪽, 시계탑이 있는 벽돌 건물. 간판은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요.

이 언덕은 창경궁 바깥 정원이던 함춘원입니다.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임금의 명령으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의정부 직속의 근대식 병원이었습니다.

목적은 치료만이 아니었습니다. 국가 차원의 의료 체계와 의학 교육을 세우고, 의료 인력을 키우는 의학교 기능을 같이 두었습니다. 장소로 정해진 곳이 함춘원 언덕입니다.

1907년에 첫 삽을 떴고, 설계는 일본인 기술자가 맡았습니다. 1908년, 서양식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완공 때의 대한의원은 지금 보는 본관 하나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입원 치료를 하던 병동, 조사와 연구를 하던 부검실, 의사를 기르던 의학교 건물이 함께 들어선 의료 단지였습니다.

현관 정면에는 자동차가 들어와 사람을 내리는 공간이 있었고, 건물 중앙에는 시계탑이 섰습니다.

대한의원
대한의원
출처: 위키백과「대한의원」

1910년의 개칭

완공 2년 뒤, 1910년 국권이 넘어갔습니다.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이 의료와 교육을 위해 지은 건물이, 식민 통치의 의료 기관으로 바뀐 해입니다.

1911년에는 부속 의학강습소로 이름과 기능이 다시 짜였습니다. 1926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을 세우면서 이곳은 그 대학의 대학병원이 되었습니다.

넓은 부지의 초기 병동, 부검실, 의학교 건물은 세월 속에 사라지거나 철거되었습니다. 자리를 지킨 것은 본관입니다.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본관으로 쓰였고, 1908년의 시계탑과 정문 현관은 그 본관의 얼굴로 남았습니다.

1970년대 말, 서울대학교병원의 새 건물이 서면서 본관이라는 역할은 끝났습니다. 그 뒤 병원 부속 건물로 쓰이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입니다.

1907년 임금의 명령으로 함춘원에 들어온 뒤, 간판은 네 번을 넘겼습니다. 조선총독부의원, 경성제국대학 대학병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본관, 병원연구소. 시계탑과 본관은 그 사이에서 언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한의원 본관은 서울대학교병원 단지 안, 옛 함춘원 언덕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현대식 병원 건물이 있고, 환자와 의료진이 오갑니다.

지상 2층입니다. 좌우가 대칭입니다. 정면 입구를 강조한 현관은 차가 들어설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지붕은 사다리꼴 우진각입니다. 중앙의 시계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1908년 완공 때의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병동과 부검실, 의학교는 없고 본관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한 건물에서 순서가 읽힙니다. 1907년 착공, 1908년 완공, 1910년 조선총독부의원, 1911년 의학강습소, 1926년 경성제국대학 병원, 광복 후 서울대 본관, 1970년대 말 이후 연구소. 2년 만에 바뀐 이름은, 1910년의 개칭이 맞습니다.

언덕의 옛 이름은 함춘원입니다. 창경궁 바깥 정원이었습니다.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임금의 명령으로 의정부 직속 병원을 여기에 짓기 시작했습니다. 치료와 함께 의학 교육, 인력을 기르는 의학교 기능을 두었습니다. 설계는 일본인 기술자입니다. 1908년 완공 때 병동, 부검실, 의학교, 본관이 한 단지였습니다. 현관에는 자동차가 들어오는 공간이 있고, 중앙에 시계탑이 있습니다.

1910년 조선총독부의원, 1911년 부속 의학강습소, 1926년 경성제국대학 대학병원.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본관이었습니다. 1970년대 말 새 병원이 선 뒤 부속 건물이 되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입니다. 간판은 네 번을 넘겼습니다.

지상 2층, 좌우 대칭, 사다리꼴 우진각 지붕, 바로크 양식 시계탑은 1908년 완공의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2년 뒤 이름이 바뀐 해는 1910년입니다. 대한제국이 지은 본관이 총독부의원을 거쳐 연구소로 남은 자리가 이 시계탑입니다.

1907년의 명령은 임금의 것이었고, 소속은 의정부 직속이었습니다. 장소는 창경궁 바깥 함춘원 언덕입니다. 완공은 1908년입니다. 단지에는 본관, 병동, 부검실,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현관의 차 대는 공간과 중앙 시계탑이 그때의 요소입니다. 1910년 개칭이 조선총독부의원이고, 1911년이 부속 의학강습소, 1926년이 경성제국대학 대학병원입니다. 병동과 부검실, 의학교는 철거되거나 사라졌습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본관으로 쓰이다가, 1970년대 말 새 건물 이후 부속이 되었고 지금은 병원연구소입니다. 지상 2층의 좌우 대칭, 사다리꼴 우진각 지붕, 바로크 시계탑이 1908년의 본관을 보여 줍니다. 이름이 두 해 만에 바뀐 지점은 1910년입니다. 함춘원 언덕의 본관만 그 단지에서 남았습니다. 의정부 직속, 일본인 기술자의 설계, 1908년의 병동과 부검실과 의학교, 1911년의 의학강습소, 1926년의 경성제국대학 병원, 광복 뒤의 서울대 본관, 1970년대 말 이후의 연구소. 시계탑이 그 순서를 한 건물에 두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대한의원은 언제, 누가 세웠나요?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임금의 명령으로 의정부 직속 병원을 함춘원 언덕에 짓기 시작해 1908년에 완공했습니다. 설계는 일본인 기술자가 맡았습니다.
당시 어떤 건물이 있었나요?
본관 외에 병동, 부검실, 의학교 건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본관만 남아 있습니다.
이름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1910년 조선총독부의원, 1911년 부속 의학강습소, 1926년 경성제국대학 대학병원, 광복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본관을 거쳐 1970년대 말 새 건물 이후 부속 건물이 되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입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대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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