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문을 헐고 세운 1898년의 석문

서울 독립문 · 서재필과 독립협회, 문 앞에 남은 영은문 주초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1898년 화강석 석문이 섰습니다. 본뜬 건물은 파리의 개선문입니다.
서울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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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서대문구 길목의 석문. 왜 파리 개선문 모양이 사신 맞이 자리에 있을까요.

이 자리는 오랫동안 영은문(迎恩門)이었습니다. 조선을 찾아오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문입니다. 이름 그대로 은혜를 맞이하는 자리였고, 사대의 역사가 붙어 있던 길목이었습니다.

1894년부터 1896년까지 갑오개혁이 추진되었습니다. 내정과 제도를 바꾸려는 개혁이었습니다. 외국 세력의 간섭에 막혀 성공하지 못했고, 자주독립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현실 위에서, 외세의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모인 곳이 이 자리입니다.

1896년의 협회, 1898년의 완공

중심에는 서재필이 있습니다. 건양 원년인 1896년, 서재필은 애국지사들과 독립협회를 조직했습니다. 사대의 상징으로 남아 있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자주와 독립을 기리는 문을 짓자는 제안이 그의 것이었습니다.

국왕이 동의했습니다. 외세에서 벗어나려던 국민의 지지도 받았고, 1896년 독립협회 주도로 공사가 시작되어 광무 2년인 1898년에 문이 완성되었습니다.

모양은 한국 전통 문루와 다릅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화강석으로 쌓은 석문입니다. 한가운데에 무지개 형태의 홍예문이 있고, 홍예는 위를 둥글게 뚫어 낸 아치형 문구멍입니다. 홍예문 왼쪽 안으로 들어가면 정상으로 오르는 돌층계가 있고, 정상 부근에는 돌난간이 둘러 있습니다.

독립문
독립문
출처: 위키백과「독립문」

오얏꽃, 독립문, 태극기

홍예 한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맛돌은 홍예를 잠그는 가운데 쐐기돌입니다. 그 위, 앞뒤 면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글자 양옆에는 태극기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문 앞에는 또 하나의 돌이 있습니다. 영은문을 헐고 남은 기둥 받침, 영은문주초 두 개입니다. 사대의 기둥을 없애는 대신 받침을 남겨 두고, 그 뒤에 개선문 형태의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주초와 석문이 한 자리에서 마주 봅니다.

중국 사신을 숙여 맞이하던 길에, 태극기와 오얏꽃을 새긴 석문이 선 해는 1898년입니다. 사신 접대의 길목이 자주를 적은 문으로 바뀐 기록입니다.

지금

독립문은 사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문 앞의 영은문주초 두 개와, 그 뒤의 화강석 독립문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돌에는 태극기 조각이 남아 있습니다.

파리 개선문을 본뜬 이유는, 1896년 서재필과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헐고 새 문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국왕의 동의와 국민의 지지를 받아 189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사신 맞이 문 자리라는 점은, 앞에 남은 주초 두 개가 보여 줍니다.

영은문(迎恩門)은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문이었습니다. 1894년부터 1896년의 갑오개혁은 내정과 제도를 바꾸려 했으나, 외국 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자주독립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 다짐이 모인 자리가 여기입니다.

건양 원년 1896년, 서재필이 애국지사들과 독립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영은문을 헐고 자주와 독립의 문을 짓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국왕이 동의하고 국민이 지지했습니다. 공사는 1896년에 시작되어 광무 2년 1898년에 끝났습니다.

석문은 파리 개선문을 본뜬 화강석입니다. 홍예문 한가운데 이맛돌에 오얏꽃무늬, 그 위 앞뒤에 한글과 한자 ‘독립문’, 양옆에 태극기 조각이 있습니다. 홍예 왼쪽 안에는 돌층계가 있고, 정상 부근에 돌난간이 있습니다. 문 앞 영은문주초는 두 개입니다. 사대의 기둥 받침을 남겨 두고 그 뒤에 석문을 세운 배치입니다.

개선문 모양이 사신 맞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1896년의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헐고 1898년에 이 문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주초 두 개가 그 앞자리를 보여 줍니다. 서대문구의 이 석문은 사적으로 남아 있고, 화강석 홍예와 오얏꽃, 태극기 조각, 한글과 한자의 독립문이 1898년 완공의 표면입니다. 갑오개혁은 1894년에서 1896년까지였고, 외국의 간섭으로 자주독립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영은문을 헐자는 제안의 주체는 서재필과 독립협회입니다. 완공 해는 광무 2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독립문은 왜 세워졌나요?
갑오개혁이 외국 세력의 간섭으로 자주독립에 이르지 못하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누가, 언제 만들었나요?
1896년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국왕의 동의와 국민의 지지를 받아 공사를 시작했고, 1898년에 완공했습니다.
문양과 앞에 남은 돌은 무엇인가요?
파리 개선문을 본뜬 화강석 석문입니다. 홍예 이맛돌에 오얏꽃, 그 위에 한글·한자 ‘독립문’과 태극기 조각이 있습니다. 문 앞에는 영은문주초 두 개가 남아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국가유산청 오픈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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