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주인 찾아간 왕릉 터, 헌릉 곁에 얽힌 비밀

태종의 헌릉 옆에서 펼쳐진 영릉 초장지와 희릉 초장지의 이야기

태종 이방원이 잠든 헌릉 곁에는 세종대왕이 18년 동안 묻혀 있던 옛터와, 35년 동안 세종의 무덤으로 잘못 알려졌던 중종 비 장경왕후의 초장지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헌릉 태종 제향
헌릉 태종 제향
출처: 국가유산청

이야기

세종대왕의 석물이 왜 태종의 헌릉 인근에서 발굴되었고, 왜 35년 뒤에야 다른 왕비의 무덤 터로 바로잡혔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조선 초기 헌릉이 성립되던 때로 올라가야 합니다.

부모 곁을 지키고자 했던 세종의 유언

1420년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가 승하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왕비의 묘역을 만들며 먼 훗날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곁에 비두는 쌍릉 형식으로 능을 다듬었습니다.

1422년 태종마저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은 셋째 아들 세종은 아버지의 무덤을 성심껏 다듬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양식을 따르되, 망주석을 뺀 문인석과 무인석, 마석 등 석물을 각각 한 쌍씩 더 세웠습니다.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웅장한 규모였습니다. 이해 세종은 학자 변계량에게 비문을 쓰게 하여 태종의 생애와 국기 확립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비각 안에 세웠습니다.

세종은 죽어서도 부모 곁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헌릉 서쪽 언덕에 안장되었습니다. 시신을 처음 안장한 무덤 자리를 초장지(初葬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1469년(예종 1년), 세종의 능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 영릉으로 옮겨졌습니다. 세종이 아버지 태종 곁에 머문 기간은 18년이었습니다.

헌인릉
헌인릉
출처: 위키백과「헌인릉」

잇따른 왕릉 조성과 22년 만의 이장

세종의 능이 여주로 옮겨간 뒤에도 헌릉 주변은 왕실의 중요한 묘역으로 쓰였습니다.

1515년(중종 10년),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가 승하했습니다. 조정에서는 헌릉 서쪽 언덕에 자리를 잡고 무덤을 만들어 능호를 '희릉'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1537년(중종 32년), 조정의 권신 김안로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희릉을 처음 조성할 때 풍수지리상 결함이 있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김안로의 주장에 따라 장경왕후의 희릉은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구역으로 옮겨졌습니다. 태종의 헌릉 서쪽 산기슭에 남아 있던 희릉 초장지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습니다.

35년 만에 바로잡힌 석물의 주인

세월이 흘러 1973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국가정보원(당시 중앙정보부) 경내 서북쪽 산기슭에서 옛 왕릉의 석물들을 발굴했습니다.

당시 조사단은 이곳을 1469년 여주로 옮기기 전 세종대왕이 묻혀 있던 '영릉 초장지'로 판단했습니다. 헌릉 서쪽에 세종의 능이 있었다는 기록과 발굴된 석물이 정황과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문화재청이 이 무덤 자리를 대대적으로 재발굴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만약 세종과 소헌왕후가 함께 묻혔던 영릉 초장지였다면 돌로 방을 만든 석실 형태의 합장릉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발굴 현장에서 나온 무덤 구조는 석회 반죽으로 묘광을 채운 단실 형태의 회격묘(灰隔墓)였습니다.

단실 회격묘라는 구조는 이곳이 세종의 영릉이 아니라, 1537년 고양으로 이장된 중종 비 장경왕후의 '희릉 초장지'였음을 입증했습니다. 1973년 발굴 이후 35년 동안 세종의 옛터로 잘못 알려졌던 장소의 진짜 주인이 가려진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세종의 영릉 초장지는 희릉 초장지 근처, 현재 순조의 인릉이 자리한 인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헌인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 그리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이 늘어서 있습니다. 헌릉 봉분 아래 비각 안에는 1422년 세종의 명으로 세워진 보물 제1805호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담장 넘어 국가정보원 경내 서북쪽 산기슭에는 35년 만에 제 이름을 찾은 장경왕후의 희릉 초장지 터가 남아 있어, 이 자리가 조선 왕실의 깊은 연원과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세종대왕은 왜 처음부터 여주 영릉에 묻히지 않았나요?
세종은 부모인 태종과 원경왕후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1450년 승하 후 헌릉 서쪽 편에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1469년(예종 1년)에 경기도 여주 영릉으로 이장되었습니다.
1973년 발굴된 석물이 왜 2008년에야 희릉 초장지로 바로잡혔나요?
2008년 문화재청의 재발굴 조사에서 세종의 석실 합장릉이 아닌 단실 회격묘 구조가 확인되면서, 중종 비 장경왕후의 희릉 초장지임이 밝혀졌습니다.
헌릉의 석물은 다른 왕릉과 어떻게 다른가요?
헌릉은 망주석을 제외한 문인석, 무인석, 마석 등 석물을 다른 왕릉보다 각각 1쌍씩 더 배치하여 조선 왕릉 중 매우 웅장한 석물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헌인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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