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07년 3월, 흥인지문 좌우에 서 있던 한양도성 성벽 8칸이 헐렸습니다.
성문을 지나다니던 사람과 우마차의 길목 위로 전차 선로를 깔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문 양쪽의 벽이 잘려 나가면서, 흥인지문은 성벽에 연결된 관문이 아니라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풍수를 보강하고 옹성을 둘렀던 동쪽 관문
흥인지문은 본래 한양도성의 동쪽을 지키던 대문입니다. 지반이 낮은 지형에 세워졌기에 초기 건립 때부터 땅을 돋우는 공사를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이곳은 도성의 성문 중 유일하게 바깥쪽에 반원 모양의 성벽인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습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들이닥치는 적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겹쳐 쌓은 방어 시설입니다. 지형이 낮아 적의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 점을 건축 구조로 보완한 것입니다.
고종 6년인 1869년에는 크게 손상되었던 성문을 새로 지었습니다. 이때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는 풍수지리에 따라 이름을 고쳤습니다. 기존의 '흥인문'에 '갈 지(之)' 자를 더해 '흥인지문'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판도 바뀌었습니다. 흥인지문의 현판은 한양 사대문 중 유일하게 네 글자이며, 정방형 글꼴로 새겨졌습니다.

전차 부설과 끊어진 성벽
그러나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도성의 방어 기능보다 도시 교통망 형성이 우선시되었습니다. 1907년(고종 44년) 3월, 전차 노선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흥인지문과 숭례문의 양옆 성벽이 각각 8칸씩 철거되었습니다.
문루 아래에 위치한 화강석 아치형 통로인 홍예문 대신, 성문 옆으로 깔린 철로 위로 전차가 오갔습니다. 수백 년 동안 도성의 안과 밖을 가르던 성벽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흥인지문 주변으로 도로와 지하철 노선이 잇따라 들어섰습니다. 지하 개발에 따른 지반 침하와 지하수위 변화는 성문 구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999년 옹성 일부가 무너져 보수를 진행했으나, 성벽 아랫부분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2002년 12월부터 2007년 8월까지 5년에 걸쳐 옹성을 완전히 해체한 뒤 지반을 보강하여 복원했습니다.
2018년 3월 9일 새벽에는 누각 내부로 침입한 인물에 의해 방화 시도가 있었으나, 현장 관리로 담장 일부만 그을린 채 당일 방화범이 체포되었습니다.
지금
흥인지문은 현재 종로구 도로 한복판의 교통섬 안에 서 있습니다.
성문 바깥을 둘러싼 반달 모양의 옹성과 정사각형 4글자 현판 '興仁之門'은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양옆의 성벽은 1907년에 잘려 나갔지만, 화강석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 올린 홍예문과 2층 문루는 이 자리가 한양의 동쪽 관문이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