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에 완공된 문에서, 1479년 공사는 1960년대에 나왔다

숭례문 · 태조 착공, 세종·성종의 중수, 2013년 복원 준공

태조 7년(1398)에 완성된 한양의 정문인데, 성종 10년(1479)의 큰 공사는 1961~1963년 해체 수리 때야 확인됐습니다.
서울 숭례문_성곽전경 (촬영년도 : 2015년)
서울 숭례문_성곽전경 (촬영년도 : 2015년)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서울 숭례문_성곽전경 (촬영년도 : 2015년)'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석축 한가운데에 홍예가 있고, 그 위에 2층 누각이 있습니다. 공식 이름은 숭례문입니다. 한양도성 남쪽 정문이라 남대문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름에는 예의를 숭상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1396년 착공, 1398년 완공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뒤 도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남쪽 정문 공사는 태조 5년(1396)에 시작해 태조 7년(1398)에 끝납니다. 돌을 쌓은 석축 가운데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뚫고,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누각을 올렸습니다.

새 도읍의 관문이었습니다. 사신이 오가고, 백성이 도성 안팎을 드나드는 문이었습니다.

목조라서 손질이 이어집니다. 1398년 완공에서 50년이 안 된 세종 30년(1448)에 크게 고쳐 짓습니다. 세종 대는 문물과 제도가 정리되고 한양의 면모가 단단해지던 때입니다. 이 중수를 거치며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처마를 받치는 구조를 짜 넣은 다포가 적용됩니다. 다포는 지붕 처마를 받치는 짜임이 기둥 사이까지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지붕 곡선은 심하지 않고, 지붕 형태는 우진각입니다.

숭례문
숭례문
출처: 위키백과「숭례문」

기록에 없던 1479년

조선 기록에는 태조 때 처음 짓고 세종 때 크게 고쳤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성종 대의 큰 공사는 그 기록만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았습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문을 해체하고 보수합니다. 부재를 나누어 조사하던 중, 성종 10년(1479)에 대규모 중수가 있었다는 기록과 부재가 성곽과 누각 안에서 확인됩니다. 세종 대의 중수 이후 30여 년 만의 공사였고, 해체·수리 전까지는 베일에 가려 있던 해입니다.

태조가 정문을 올렸고, 세종이 1448년에 다시 세웠으며, 성종이 1479년에 한 번 더 크게 손본 셈입니다. 서울에 남은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는 말은, 이 세 차례의 손길 위에 있습니다.

연도를 다시 놓으면 이렇습니다. 1396년 착공, 1398년 완공. 1448년 세종 30년의 중수. 1479년 성종 10년의 공사. 앞면 5칸, 옆면 2칸, 2층. 홍예는 석축 가운데에 있고, 처마 받침은 다포이며, 지붕은 우진각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 도성을 쌓을 때, 남쪽 정문은 그 도성의 얼굴이었습니다. 공사 시작은 태조 5년, 끝은 태조 7년. 두 해 사이에 석축을 올리고 홍예를 뚫고 누각을 얹습니다. 앞으로 다섯 칸, 옆으로 두 칸. 사람들이 남대문이라 부르는 이름과, 예의를 숭상한다는 뜻의 숭례문이라는 공식 이름이 한 문에 같이 있습니다.

목조 누각은 한 번 올리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완공에서 50년이 채 되기 전, 세종 30년에 크게 고쳐 짓습니다. 이때 다포가 들어갑니다. 처마를 받치는 부재가 기둥 머리에만 있지 않고 기둥 사이에도 짜입니다. 지붕선은 심하게 굽지 않고, 형태는 우진각입니다.

그런데 조선 문서가 반복해 적은 것은 태조의 창건과 세종의 중수까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종 10년의 대규모 공사는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문을 해체해 부재를 조사하면서 확인됩니다. 성곽과 누각 안에 그 해의 기록과 부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세종 중수 뒤 30여 년 만이었고, 해체 전까지는 그 공사의 규모가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에 남은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는 말은, 1398년 한 해의 완공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태조가 열고, 세종이 1448년에 다시 세우고, 성종이 1479년에 또 손본 문입니다. 세 임금의 공사가 포개진 뒤에야 한양 남쪽의 정문으로 남습니다.

지금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2층 누각 지붕이 무너지고, 1층 지붕 일부가 탔습니다. 옛 부재를 고증하고 전통 방식으로 복원하는 데 5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2013년 5월 4일 복원 공사가 준공되어 다시 공개됩니다.

주변은 차도와 건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홍예 아래로 지나는 문은, 1398년의 완공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1448년의 중수, 1961~1963년 해체에서 확인된 1479년의 공사, 그리고 2013년 5월 4일의 준공이 한 자리에 겹쳐 있습니다.

2008년 2월 10일 불은 2층 지붕을 무너뜨리고 1층 지붕 일부를 태웠습니다. 잃은 부재를 고증하고 전통 방식으로 되돌리는 데 5년 2개월이 걸렸고, 일반에 다시 열린 날이 2013년 5월 4일입니다. 처음의 질문은 여기로 닫힙니다. 성종 10년의 큰 공사가 왜 1960년대에야 나왔느냐면, 그 흔적이 성곽과 누각 부재 속에 있다가 해체 수리에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 있는 문은 태조·세종·성종의 중수와, 화재 뒤의 복원이 한 홍예 위에 있는 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숭례문은 처음 언제 지어졌나요?
조선 태조 5년(1396)에 착공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숭례문을 고쳐 지은 기록이 있나요?
세종 30년(1448)에 크게 고쳐 지었으며, 1961~1963년 해체 수리 당시 성종 10년(1479)에도 대규모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 확인되었습니다.
2008년 화재 이후 언제 다시 일반에 공개되었나요?
5년 2개월간의 복원공사를 거쳐 2013년 5월 4일에 준공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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