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강원도 원주 부론면 거돈사 터, 절터 한편에 8각 승탑이 있습니다. 그 탑은 천 년을 버틴 진품이 아닙니다. 옛 모습을 본떠 다시 만든 재현탑입니다. 진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 있습니다.
1018년, 지종의 사리탑
승탑이 처음 선 해는 고려 현종 9년(1018)입니다. 사리의 주인은 원공국사 지종(930~1018)입니다. 930년에 태어나 고려 왕실과 승단의 존경을 받던 승려이고, 1018년 입적합니다. 왕실과 교단이 그의 사리를 모시려고 그가 머물던 원주 거돈사에 사리탑을 세웁니다. 보물로 지정된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입니다.

전체는 8각입니다. 바닥돌 없이 기단부터 시작합니다. 기단은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 세 단입니다. 아래받침돌 각 면에는 안상을 깊게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넣었습니다. 가운데받침돌은 위아래로 굵은 테를 두르고, 안상 안에 8부신중을 새겼습니다. 8부신중은 불법을 지킨다는 여덟 신입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2중으로 돌렸습니다.
8각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있고, 그 기둥마다 꽃무늬가 있습니다. 앞면과 뒷면에는 문 모양과 자물쇠 무늬가 있어, 닫힌 문 너머에 사리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좌우에는 창문 모양, 나머지 네 면에는 사천왕입상이 있습니다.
지붕돌도 8각입니다. 몸돌과 만나는 곳에 4단 받침이 있고, 그 위는 목조 서까래를 본뜬 조각입니다. 처마 여덟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습니다. 지붕 낙수면의 기와골은 처마 끝에서 막새기와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 박물관의 탑은 바닥돌이 없는 상태로 기단부터 시작합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남은 빈자리입니다.

일본인 정원, 1948년 경복궁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이 승탑은 거돈사지에서 무단으로 반출됩니다. 한 일본인의 개인 소장으로 넘어가 집 정원의 석조물이 됩니다. 절터에는 탑이 서 있던 자리가 비었습니다.
1945년 광복 뒤, 1948년에야 그 정원에서 나와 국가로 돌아옵니다. 먼저 서울 경복궁 경내로 옮깁니다. 거돈사는 이미 폐사되어 터만 남아, 승탑은 바로 원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기면서 탑도 경복궁을 떠나 용산 야외전시장으로 갑니다.
지종이 입적한 지 1000년이 넘도록 사리탑은 거돈사지에 없습니다. 원주 터에는 형태를 본뜬 재현탑이 있고, 원주 지역과 문화유산 관계자들은 박물관의 진품을 본래 터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절터에는 사리탑과 함께 세운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등 옛 석조물이 남아 있습니다.
왜 아직도 원주에 없느냐는 질문의 답은 이 경로입니다. 일제강점기 반출 → 일본인 개인 정원 → 1948년 경복궁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닥돌은 없고, 거돈사지에는 재현탑이 서 있습니다.
지종은 930년에 태어나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입적합니다. 왕실과 교단이 거돈사에 사리탑을 세운 해가 그 해입니다.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의 주인은 그 사리입니다. 절터에서 먼저 보이는 8각 탑은 그 진품을 본떠 최근에 다시 만든 재현탑이고, 진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습니다.
진품의 구조를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바닥돌 없이 기단 세 단으로 시작합니다. 아래받침돌은 면마다 안상과 꽃무늬, 가운데받침돌은 위아래 굵은 테와 안상 안의 8부신중, 윗받침돌은 연꽃잎 2중입니다. 8부신중은 불법을 지킨다는 여덟 신입니다. 몸돌 모서리 기둥 여덟에는 각각 꽃무늬가 있고, 앞뒤는 문과 자물쇠, 좌우는 창문, 나머지 네 면은 사천왕입상입니다. 닫힌 문 너머에 사리가 있다는 표시가 문과 자물쇠입니다. 지붕돌도 8각이고, 몸돌과 만나는 곳에 4단 받침, 그 위는 목조 서까래를 본뜬 조각입니다. 처마 여덟 귀는 살짝 들리고, 낙수면 기와골은 막새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이 탑이 거돈사지를 떠난 것은 일제강점기입니다. 무단 반출되어 일본인 개인 집 정원의 석조물이 됩니다. 절터의 탑 자리는 비었습니다. 1945년 광복 뒤 1948년에 그 정원에서 나와 경복궁으로 옮겨집니다. 거돈사는 이미 폐사되어 터만 남아, 바로 원주로 돌려보내지 못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기면서 탑도 경복궁을 떠나 야외전시장으로 갑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원래의 바닥돌은 없고, 기단부터 서 있습니다.
원주 터에는 재현탑이 있고, 사리탑과 함께 세운 보물 원공국사탑비 등 석조물이 남아 있습니다. 지역과 문화유산 쪽에서는 박물관의 진품을 본래 터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1018년의 탑이 아직도 원주에 없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뒤 1948년 경복궁으로 돌아왔어도 절터까지는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진품이 있습니다. 8각 기단의 8부신중, 몸돌의 문·자물쇠·창문·사천왕, 지붕의 서까래 조각이 그 탑에 있습니다. 원주 거돈사지에서 보는 탑은 재현탑입니다. 1018년에 거돈사에 세운 원공국사 지종의 사리탑은, 1948년에 회수된 뒤에도 고향 절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박물관 마당에 있습니다.
부론면 골짜기의 절터와 용산의 야외전시장은 같은 탑의 두 자리입니다. 한쪽은 재현이고, 한쪽은 지종의 사리를 모신 진품입니다. 일본인 정원을 거쳐 1948년 경복궁, 그다음 용산. 바닥돌이 없는 상태는 그 유랑의 흔적입니다. 절터의 재현탑과 탑비가 빈자리를 표시하고, 원주 환원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