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포트캐닝 힐

일부 남음
싱가포르 포트캐닝 힐

싱가포르 도심 한복판의 작은 언덕 포트캐닝은 600년 동안 이 섬을 다스린 자들이 머문 자리다.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14세기 싱가푸라 왕국의 왕들은 그래서 이 언덕에 궁을 지었고, 평민은 오를 수 없었으며 왕들이 묻혔다는 말까지 돌아 '금지된 언덕'이라 불렸다. 14세기 말 마자파힛의 침공으로 마지막 왕이 말라카로 떠난 뒤에는, 왕들의 혼령이 남아 있다고 믿어 400년 동안 아무도 오르지 않았다. 1819년 해협을 지킬 항구가 필요했던 영국도 가장 먼저 이 언덕에 국기를 올렸다. 1822년 래플스는 현지인들이 꺼리던 이 언덕에 집을 지었고, 이듬해 편지에 '여기서 죽거든 말레이 왕들의 무덤 곁에 묻어 달라'고 썼다. 1857년 인도 대반란에 겁먹은 싱가포르의 영국인들은 1859년 관저를 허물고 바다를 지키면서 위급할 때 유럽인이 피신할 요새를 쌓았다. 그러나 곧 철갑 증기 군함과 새 대포가 나오면서 구식이 됐고, 요새는 한 번도 전투를 치르지 않은 채 1907년 대문만 남기고 헐렸다. 1920년대 영국군 사령부가 들어선 언덕은 폭격기의 시대를 맞아 1930년대 후반 9미터 아래에 지하 벙커를 팠다. 1942년 2월 일본군이 밀려들고 폭격이 쏟아지자 지휘부는 이 벙커로 내려갔고, 2월 15일 아침 물이 바닥나고 시가지 민간인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퍼시벌 장군이 항복을 결정했다. 결정에 걸린 시간은 15분 남짓이었다고 한다. 600년 동안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던 권력이 처음으로 땅속으로 숨은 끝이었다. 전쟁 뒤 입구가 막혀 위치마저 잊혔던 벙커는 1988년 한 기자가 다시 찾아냈고, 항복 55주년인 1997년 박물관이 됐다.

큐레이션

그때 사라진 것

14세기 왕궁, 래플스의 관저(1859년 철거), 요새(1907년 대문만 남기고 철거)

지금 이 자리

포트캐닝 공원. 요새 대문과 비상 출입구, 마지막 왕을 기리는 이스칸다르 샤 사당, 1942년 항복이 결정된 지하 벙커 '배틀박스'(1997년 박물관 개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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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1.2946 · 경도 103.846

출처: Wikipedia 'Fort Canning Hill', 'Battlebox', 'Fall of Singapore'; roots.gov.sg; NLB Curiocity; 사진 Wikimedia Commons(Charles Andrew Dyce 1846 퍼블릭 도메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