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지

신라일부 남음1238년 사라짐
경주 황룡사지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에 완성되었다. 그 후 574년, 인도의 아소카왕이 철 57,000근·금 3만분으로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자,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게 되었는데, 5m가 넘는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년(584)에 금당을 짓게 되었다.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바램의 9층 목탑을 짓게 되는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 이와 같이 황룡사는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큰 절이었으며,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제외한 2가지 보물이 황룡사 9층목탑과 장육존상이었다는 것에서도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땅이 곧 부처가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불교관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와 9층 목탑은 불에 타 사라졌다. 목탑은 1238년 이전까지 여러 차례 화재로 손상되고 중수되기를 반복했으나(가장 마지막 중수는 871년 경문왕 때), 몽골 침입 이후로는 다시 세워지지 못했다. 지금은 절터에 목탑을 받치던 초석(주춧돌)과 금당 터만 남아 있으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국가유산청 오픈API

그때 사라진 것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

지금 이 자리

절터(주춧돌·금당터)만 남음. 사적으로 지정되어 발굴·정비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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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35.835728 · 경도 129.230773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위키백과「황룡사 9층 목탑」·「경주 황룡사지」